美 소아과 의사로 일하는 저자
산불-홍수-폭염 등 기후 변화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분석
산불 시즌에 호흡기 환자 늘고, 미세입자가 폐 통해 뇌로 이동
학습장애-주의력 부족 위험 커져
◇아이들이 쉬는 숨/데브라 헨드릭슨 지음·노지양 옮김/360쪽·2만2000원·흐름출판
기후 위기의 위험성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다. 호흡기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증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 노원구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KF94 마스크를 착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어린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세상은 알아듣지 못한다.”
여덟 살 때 히로시마 원폭을 겪은 평화운동가 오구라 게이코의 이 말로 신간은 문을 연다. 우리는 또 무엇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겐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지구 평균기온은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한다. 산불과 허리케인, 폭염 뉴스는 일상이 됐다.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감각이 무뎌졌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는 도시인 네바다주 리노에서 일하는 소아과 의사가 쓴 이 책은 바로 그 무감각을 깨우기 위해 기후 변화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현재 미국에선 초대형 산불이 되풀이되며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 미줄라 같은 도시에 사는 700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산불 시즌마다 짙은 연기를 들이마신다. 의사인 저자의 머릿속 ‘계절성 질환 달력’에도 변화가 생겼다. ‘독감 유행 기간’ 옆에 ‘산불 기간’이 추가됐다.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그때 몰려오기 때문이다.
산불이 남기는 미세입자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건강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이 입자들은 바람을 타고 수천 km를 이동하며, 크기가 작아 폐 깊숙이 침투해 혈류를 따라 심장과 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남부 캘리포니아의 산불을 분석한 연구들은 연기 노출 지역 어린이들에게 천식, 기관지염, 폐렴, 알레르기 증상이 더 자주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특히 5세 이하 유아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암성 오염물질인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역시 어린이에게 더 치명적이다. 성인은 간 효소가 일부 독성 물질을 분해해서 몸 밖으로 배출하지만, 태아와 영유아는 이러한 방어 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같은 농도에 노출돼도 어린이가 더 깊은 피해를 보는 이유다.
더 우려스러운 건 오염이 어린이의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미세 오염 입자가 많은 지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아이들은 학습 장애, 주의력 부족,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위험이 높다는 연구가 잇따른다. 멕시코시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뇌 영상 검사에선 절반 이상에서 전전두엽 염증이 발견됐다. 계획하고 기억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영역이 손상된 것. 기후 위기는 단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인지 능력까지 위협하고 있다.
정신적 상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대홍수와 초강력 허리케인, 대형 산불은 점점 더 자주 발생하지만, 재난 통계는 어린이들이 겪는 실제 경험을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집이 무너지고 학교가 사라지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깊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자연재해를 경제적 손실로만 환산하면, 이처럼 오래 지속될 정서적 상처는 보이지 않게 된다.
신간은 기후 위기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건강 문제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어린이들이 내몰려 있음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만든 변화가 가장 작은 몸에서 먼저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오구라 게이코의 말처럼, 어린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여주지 않으면 세상은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세계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위기의 신호를 계속 듣고 있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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