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 변신한 가수 김수철이 2일 오전 서울 중랑구 본인의 작업실에서 소리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외딴 행성에서 보내오는 소리가 안 들린다고? 우리가 아는 지식 빼고 상식 빼고 세상을 봐, 그래야 들려.”
2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가수 김수철(69)이 자신의 그림 ‘어느 행성의 소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캔버스는 내게 또 하나의 악보”라는 그는 14일부터 다음 달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데뷔전 ‘김수철: 소리 그림’을 개최한다. 30여 년간 아무도 모르게 혼자 그려온 그림 1000여 점 가운데 160점을 추려 처음으로 외부에 선보인다.
이날 작업실은 바라만 봐도 마음 속 구김이 펴지는 듯한 그림들이 빼곡했다. 검은 먹 대신 푸른 물감을 쓴 ‘김수철 표’ 수묵화, 알록달록한 도형 위에 VHS 비디오테이프를 풀어헤쳐 얼굴을 만든 자화상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30~40년 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등의 VHS를 활용했어요. 10대 시절부터 그림은 내 삶의 일부였죠. 작곡할 땐 악상이 떠오르면 도형이나 색깔로 먼저 표현하고는 했습니다.”
1977년 가수로 데뷔한 이래 파격적인 음악으로 대중을 놀라게 했던 ‘작은 거인’의 면모는 그림에서도 묻어난다. 세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소리부터 인간의 청력으론 들리지 않는 깊은 바닷속 소리까지 200~500호 크기 화폭에 담아냈다. 그는 “아크릴 물감으로 유화 질감을 내려 노력했다. 아크릴이 유화에 못 미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BTS(방탄소년단)가 공연했던 뉴욕 유엔본부에서 2002년에 ‘기타 산조’를 연주한 뒤로는 23년간 외국 땅을 못 밟았어요. 하지만 제겐 그림과 음악으로 만드는 세상이 더 컸습니다.”
시각 예술을 향한 애정은 단순한 취미 이상이었다. 안개 풍경으로 잘 알려진 화가 이기봉과는 죽마고우, 지난달 별세한 배우 안성기와는 호형호제하며 오랜 시간 교류했다. 고인과는 1984년 영화 ‘고래사냥’에도 함께 출연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다들 말리던 국악을 하다가 돈이 떨어질 때면 성기 형이 흔쾌히 큰돈을 빌려주고는 했어요. 삶의 은인이죠. 전시회에 깜짝 초대해서 꼭 격려받고 싶었는데…. 그림 한 점 드릴 수 없어 너무 슬픕니다.”
전시에선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김 씨는 매일 새벽 5시 집을 나서 오후 6시까지 작업실에 머물며 10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점심은 김밥, 저녁은 햄버거다. “요플레 뚜껑 핥아먹듯” 아껴 쓰는 물감이지만, 만만찮은 재료비를 충당하려 적금을 2번이나 깼다. 그는 “전시 개최에 드는 돈이 예상치의 2배를 넘어 환장한다”면서도 “예술의전당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밥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다. 재벌이 된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전시 티켓값이 2, 3만 원씩 하는 요즘, 김 씨가 주최 측을 설득해 맞춘 입장료는 1만 원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도 마음 편히 보러 오길 바라서였다.
“아무렴 좋다, 좋아. 돈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전시를 보러 온 분들이 힘과 평안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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