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멈칫거리며 생의 다음 수를 두는 시간, 인터메초

  • 동아일보

변호사인 형과 체스 선수인 동생
아버지의 죽음 이후 멈춰서지만
‘막간’의 시간 가지며 삶 이어가
◇인터메초/샐리 루니 지음·허진 옮김/624쪽·2만1000원·은행나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두 형제의 삶은 잠시 멈춘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완전히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 상실 이후의 삶을 다시 움직이기 위해선 ‘막간’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노멀 피플’(2020년) ‘친구들과의 대화’(2018년)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작가가 이런 정지된 시간을 응시한 소설이다. 제목(intermezzo)은 음악의 간주곡, 혹은 체스에서 흐름을 깨는 뜻밖의 한 수를 가리킨다.

형 피터는 촉망받는 변호사다. 사회적으로는 안정돼 있지만, 사적인 관계는 무너져 있다. 헤어진 연인과의 미묘한 유대,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며 흔들린다. 동생 아이번은 체스 선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우연히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삶은 그에게도 녹록지 않다. 두 형제는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아버지의 죽음이란 엄청난 상실 앞에서 닮은 얼굴을 드러낸다.

이 소설은 극적인 사건보다 감정의 미세한 결을 중요하게 다룬다. 사랑과 애증, 죄책감과 회피, 계급과 정상성에 대한 압박을 일상의 장면 속에 녹였다. 인물들은 옳은 선택을 하기보다, 가능한 선택을 붙든 채 다음 수를 고민한다. 그 망설임의 과정이 곧 이 소설의 서사다.

현대인의 불안을 포착하는 저자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형은 주류에 속하고자 한 행동을 모두 후회하지만, 동생은 주류로부터 고집스럽게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피터의 새 애인은 높은 임대료를 부르는 집주인에게 내쫓길 위기에 처하고, 아이번의 연인은 좁은 동네에서 온건하게 살아가려 애쓴다. 작가는 이들의 평범한 시련을 돋보기처럼 키워 보고 헤집어 냄으로써, 곱씹고 음미할 이야기로 발전시킨다.

상실을 단순한 극복의 서사로 축소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대신 상실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건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끌림과 따뜻한 사랑일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읽다 보면, 멈칫거리며 결국 다음 수를 두는 것이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소설#상실#형제#사랑과 애증#죄책감#계급과 정상성#감정의 미세한 결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