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 ‘큰글자 책’ 떴다…노인용 넘어 ‘새로운 읽기 방식’ 손짓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29일 15시 50분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문을 열고 마주한 첫 매대에 이색적인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유노북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익숙하게 봤던 제목들. 그런데 이 책들은 제목이 유난히 또렷하게 읽혔다. 기존 책보다 훨씬 큰 글자. 교보문고가 최근 출판사들과 협업해 선보인 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다.

큰글자책은 출판계에서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은’ 책으로 인식돼 왔다. 크고 빳빳한 외형 탓에 “교과서 같다”는 인상까지 줬다. 도서관에서도 ‘실버 도서’라며 별도 코너에 비치된 채 고령층만을 위한 특수 포맷으로 여겨졌다. 가격도 일반 책보다 2~3배 비쌌다.

이런 탓에 시중 서점에선 취급 자체가 흔치 않았던 큰글자책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큰글자책을 특정 연령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를 포괄하는 ‘읽기 환경의 선택지’로 재정의하는 분위기다. 오디오북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연령대들이 즐기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 ‘이지페이지’는 단순히 글자 크기만 키운 게 아니다. 행간과 자간, 종이와 표지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스타일을 다시 설계했다. 예컨대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기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비교해보자. 가로 길이는 같지만, 세로 길이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표지는 글씨 크기 외엔 일반 단행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련되게 디자인해 ‘노인책’이란 인상을 걷어냈다.

선정 도서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기존 큰글자책은 최신 화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특정 연령층을 전제로 고전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는 ‘첫 여름, 완주’(2025년),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2024년) 등 최근에 독자 반응이 좋았던 신간 10권이 포함됐다.

29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비치된 큰글자도서 브랜드 ‘이지페이지’ 서적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9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비치된 큰글자도서 브랜드 ‘이지페이지’ 서적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의 기획을 맡은 박정남 교보문고 점포마케팅 팀장은 “큰글자책은 고령자만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를 위한 읽기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영국 사례를 보면 글자가 클수록 청소년의 완독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젊은 독자들이 “눈이 빨리 피로해진다” “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경험을 자주 호소한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읽기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큰글자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최근 오디오북도 더 이상 중장년층이나 시각 약자를 위한 보조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지난해 오디오북 이용 회원의 연령대는 40대(39.9%), 30대(27.2%), 50대(15.8%), 20대(10.9%) 순. 한 권의 책을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으로 바꿔가며 읽을 수 있는 ‘페어링’ 기능 이용 횟수도 지난해 10월 기준 누적 1400만 회로 늘어났다. 종이책의 바코드를 찍고 페이지를 입력하면 읽던 지점부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이어볼 수 있는 기능이다.

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지적·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젊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체감하는 중장년층, 이른바 신중년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국방부가 진중문고를 통해 장병 독서를 장려하듯, 신중년의 독서를 뒷받침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문화복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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