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外

  • 동아일보

《연말은 공연계의 대목이다. 보고 싶은 작품을 즐기며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은 뜻 깊다. 취향에 맞춰 골라 볼 수 있게 성찬이 마련됐다. 이제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
놀라운 황홀함, 먹먹한 여운 속 묵직한 성찰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호랑이와 보트에 남겨진 파이(박정민)는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먹먹함을 느낀다. 에스앤코 제공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호랑이와 보트에 남겨진 파이(박정민)는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먹먹함을 느낀다. 에스앤코 제공
인도에서 캐나다로 가던 배가 폭풍우로 침몰해 227일간 태평양을 떠돌다 홀로 발견된 소년 파이. 사고 조사를 위해 찾아온 보험사 담당자에게 파이는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벵골 호랑이와 구명 보트에 남게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2002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겼다. 국내 초연이다. 2019년 영국 셰필드에서 처음 선보였고 2021년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랐다. 소설이나 리안 감독의 동명 영화(2013년)를 본 이라면 동물들과 폭풍우, 광활한 바다와 신비로운 생명체 등을 어떻게 무대에 구현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막이 오르면 이 모든 궁금증은 단숨에 날아간다. 바다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우, 배에서의 아비규환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무대는 구출된 파이가 입원한 병원에서 호랑이와 사투를 벌이는 보트, 시끌벅적한 시장 등으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역동적인 연출에,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가 몰입감을 높인다.

호랑이와 얼룩말, 오랑우탄 등을 인형(퍼핏)으로 정교하게 연출한 무대는 압권이다. 호랑이가 포효하며 달려드는가 하면 고기를 거칠게 뜯는 야생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된다. 귀를 쫑긋거리는 얼룩말, 두 팔을 벌린 채 뛰어다니는 오랑우탄, 끈질기게 공격하는 하이에나까지, 정밀하게 만든 퍼핏과 숙련된 기술로 이들의 움직임을 실감나게 구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가늠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상실 속에서도 믿음을 갖고 살아내려는 몸부림은 생명과 삶을 묵직하게 성찰하게 한다. 놀라운 황홀함과 가슴 먹먹한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파이 역은 박정민 박강현이 맡았다. 아버지는 서현철 황만익, 엄마·간호사·오렌지주스는 주아 송인성이 연기한다. 오카모토·선장 역에는 진상현 정호준, 루루 첸 역에는 임민영 김지혜가 발탁됐다. 제작사는 장르를 연극이나 뮤지컬이 아닌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고 설명했다.

내년 3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 8세 이상 관람 가능. 6만∼16만 원.

뮤지컬 물랑루즈!
화려함의 극치에서 피어난 순수한 사랑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크리스티안(차윤해·왼쪽)과 사틴(김지우). CJ ENM 제공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크리스티안(차윤해·왼쪽)과 사틴(김지우). CJ ENM 제공
프랑스 파리의 유명 클럽 물랑루즈. 미국에서 온 무명 작곡가 크리스티안과 물랑루즈의 스타 사틴은 사랑에 빠진다. 물랑루즈 단장인 지들러는 재정난이 심해지자 사틴을 통해 거부 몬로스 공작의 후원을 받아낸다. 사틴은 크리스티안과 몰래 사랑을 나누며 몬로스를 유혹하는 위태로운 곡예를 이어가고, 자유로운 예술가 로트렉은 크리스티안과 함께 물랑루즈에서 선보일 공연을 만드는데….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겨 201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다. 국내에는 2022년 처음 선보인 뒤 이번이 두 번째 무대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함에 압도된다. 강렬한 붉은색으로 꾸며진 무대, 그 양옆을 각각 차지한 풍차와 거대한 코끼리상. 극장 계단도 붉은 커튼과 조명으로 꾸몄다.
사랑에 모든 걸 던지는 크리스티안, 그를 사랑하지만 물랑루즈를 위해 희생하는 사틴은 아슬아슬하다. 예술을 향한 계산 없는 열정과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본과의 대립도 비춘다. 캉캉춤 등 화려한 댄스와 각종 기예가 쏟아지고, 탄탄한 실력을 지닌 배우들이 시원스레 때론 감미롭게 부르는 노래와 매끄러운 연기에 눈과 귀가 즐겁다.
크리스티안 역은 홍광호 이석훈 차윤해가 맡았다. 사틴은 김지우 정선아가 연기한다. 지들러 역에는 이정열 이상준이, 몬로스 공작 역에는 박민성 이창용이 발탁됐다. 지현준 최호중이 로트렉을 연기한다.

공연 시작 10분 전부터 클럽 분위기를 느끼는 쇼가 진행되기에 여유 있게 입장하길 권한다.

내년 2월 22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14세 이상 관람 가능. 9만∼18만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꿈을 향해 나아간 맑고 따스한 여정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에서 인간의 첫 달 착륙 때 사령선을 홀로 지킨 마이클 콜린스(유준상). 컴퍼니연작 제공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에서 인간의 첫 달 착륙 때 사령선을 홀로 지킨 마이클 콜린스(유준상). 컴퍼니연작 제공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했을 때 사령선을 홀로 지킨 우주비행사가 있었다. 마이클 콜린스. 달까지 갔지만 정작 달에는 발을 내딛지 못하고 달의 뒤편으로 갔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삶을 되짚어 본다.

인간의 첫 달 착륙이라는 역사를 썼지만 그에게 돌아온 영광은 없었다. 우주, 그리고 달을 사랑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한 그의 고독하고 충만한 여정을 그렸다.

창작 1인극으로, 유준상 정문성 고훈정 고상호가 번갈아가며 무대에 선다.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달을 사랑했던 공군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우주비행사로 지원해 고된 훈련을 견디고 맨 몸으로 정글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힌다. 달을 향한 여정은 험난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동료를 잃고도 훈련을 이어가야 했다. 동료가 앉았던 그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아름답지만 냉혹한 우주에서 한없이 미약하지만 의지를 꺾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를 비춘다. 구토가 나오는 훈련 과정, 마침내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바라본 벅찬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단 한 명의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운다. 훈련장, 광대한 우주, 달의 뒤편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영상도 몰입도를 높인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가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는 것임을 다정하게 전한다. 단단하고 깊이 있는 수작이 탄생했다.

김한솔이 극본과 대사를 썼다. 강소연이 작곡하고 김지호가 연출했다.

내년 2월 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8세 이상 관람 가능. 5만∼7만 원.

뮤지컬 렌트
열정으로 폭발하는 청춘의 에너지

뮤지컬 ‘렌트’에서 콜린(황건하·왼쪽)과 마크(양희준·가운데), 엔젤(조권)이 ‘산타페’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렌트’에서 콜린(황건하·왼쪽)과 마크(양희준·가운데), 엔젤(조권)이 ‘산타페’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사는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롭고 뜨거운 삶을 그렸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기가 끊긴 집에서 마크와 로저는 간신히 추위를 견딘다. 불을 빌리러 온 미미는 로저와 사랑에 빠진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은 콜린은 엔젤의 도움을 받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정식 공연을 하기 하루 전날 대동맥 박리로 요절한 조나단 라슨이 자전적 이야기를 극본과 노래에 담았다. 마약, 동성애, 에이즈 등 청춘들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담았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0년 첫 선을 보였고, 올해가 10번째 공연이다.

유명한 ‘Seasons of Love’를 비롯해 ‘Rent’, ‘I’ll cover you’ 등 R&B, 발라드, 록, 탱고,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미래는 걱정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청춘의 들끓는 에너지와 감정선이 음악과 강렬하게 결합한다. 배우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객석까지 달군다.

로저는 이해준 유현석 유태양이 연기한다. 미미 역에는 김수하 솔지, 마크 역에는 진태화 양희준이 발탁됐다. 콜린은 장지후 황건하, 엔젤은 조권 황순종이 연기한다.
내년 2월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 14세 이상 관람 가능. 7만∼1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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