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미증유의 대홍수展
보고서-신문기사 등 214점 전시
20세기 최악 재해 생생히 재구성
오늘날 서울 용산구에 해당하는 지역이 1925년 대홍수로 침수된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된다는 말은 듣기만 하던 것을 서울 근처에서 실제로 보게 됐다. 동리가 변해 밭이 되고 집터가 변해 강이 되어버린 것이다.”(1925년 7월 28일 동아일보)
1925년 7월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라 불리는 을축년 대홍수가 서울을 집어삼켰다. 당시 8일 동안 753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초가집들은 “멀리멀리 정처 없이 서해로 떠나가고 말았”으며, 가축과 농작물도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지난달 26일부터 선보인 특별전 ‘미증유(未曾有)의 대홍수’는 각종 기록물을 통해 을축년 대홍수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홍수 관련 지도와 보고서, 신문 기사, 수필 등 214점을 밀도 높게 전시해 당시 재해를 재구성했다.
전시품은 아무래도 문헌 위주지만, 영상물과 보도 사진 등 풍부한 시각 자료를 더해 볼거리를 보완했다. 오늘날 마포 일대를 포함한 경성 근교 농지가 타격을 입어 먹거리 가격이 줄줄이 폭등한 현실은 표로 보여준다. 일본인 나카무라 겐토가 쓴 ‘경성부근 수해실황기’에 따르면 100개에 80엔 정도 하던 무 가격은 수해 이후 180엔으로, 가지 100개 가격은 70엔에서 130엔으로 치솟았다.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조선인은 이재민 구제 정책에서조차 차별받았다. 이정민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본인에게는 쌀죽을 나눠줬지만, 조선인에게는 좁쌀과 입쌀을 섞은 주먹밥이 제공됐다”며 “항일운동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민족적인 구호 활동을 막고 관련 언론 보도도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수해 방재 대책과 2022년 중부권 폭우 사태도 함께 짚는다. 이 연구사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제방 축조 등 치수(治水)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을축년 대홍수에 대한 기억은 점차 잊혀 갔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적 재난을 돌아보고 대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달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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