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북부 산악 지방에선 2000년간 절벽서 장례 치러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봉안당엔 두개골 610개 전시해 죽음 기려
문화마다 장례 풍습 가지각색
◇세계 장례 여행/YY 리악 지음·홍석윤 옮김/192쪽·2만8000원·시그마북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축제부터 한국의 차례상 문화까지,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장례 풍습을 통해 죽은 이를 산 자의 기억 속에 기려 왔다. 사진은 필리핀의 ‘절벽에 매달려 있는 관’을 나타낸 일러스트. 시그마북스 제공
알프스산맥이 내려다보이는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의외의 공간, 지하 봉안당이 있다. 이곳엔 손으로 하나하나 채색한 두개골 610개가 보관돼 있다. 꽃과 나뭇잎 무늬로 장식하거나,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일을 적어 넣은 것도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두개골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왜 유해를 전시한 걸까. 이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맞게 될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가 고대 이집트의 미라부터 인도의 야외 화장, 미국의 방부처리 산업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지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례 의식을 탐색한 책이다. 인류 역사상 대표적인 장례 방식인 매장과 화장뿐 아니라 티베트 산악 지대의 조장(鳥葬), 남미 와리족의 식인 의식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조명한다. 감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컬러 일러스트는 죽음을 삶의 중요한 일부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저자의 시선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필리핀 북부 산악 지방 사가다에서는 약 2000년 동안 죽은 이를 동굴이나 석회암 절벽의 벽에 묻어 왔다. 이른바 ‘매달린 관’이다. 계곡 곳곳에는 수백, 수천 개의 관이 바위틈과 절벽 가장자리에 매달린 모습으로 남아 있다. 관은 받침대를 이용해 들어 올리거나, 덩굴에 엮어 선반처럼 튀어나온 바위나 절벽에 박힌 기둥 위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설치한다.
이 지역의 토착 부족 이고로트족은 시신을 높은 곳에 두면 홍수나 야생동물로부터 안전할 뿐만 아니라 조상의 영혼에 더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필리핀이 3세기 넘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사가다만은 지형적 고립으로 인해 그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았다. 덕분에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인도의 갠지스강 변에는 시신을 태우는 전통의 불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힌두교 신앙에서는 영혼이 새로운 육신으로 환생하기 전에 불을 통해 정화돼야 한다고 여긴다. 화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의식을 주도하는 장남이 고인의 두개골을 뚫거나 깨뜨려 영혼을 해방시키는 의식을 행한다.
바라나시에서는 매일 약 100건의 화장이 이뤄지며, 이 중 많은 수가 전통적인 야외 화장터에서 진행된다. 화장 과정에서 발생한 독성 폐기물은 그대로 갠지스강으로 흘러들고, 이질과 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을 유발하는 거대한 ‘박테리아 스튜’를 만든다. 수백만 명이 그 물을 마시고, 요리하고, 목욕하고, 수영한다. 강을 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전통주의자들의 반발과 정치적 부패가 얽혀 정화 사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갠지스강 변에선 여전히 장례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책에 소개되는 장례 의례 가운데 일부는 낯설고, 때로는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을 대하는 데 옳은 방식과 그른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는 문화적 차이일 뿐이며, 그 안에는 나름의 의미와 망자를 존엄하게 보내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남은 삶의 모습에 깊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환기한다. 다양한 장례 풍습을 들여다보는 일은 죽음뿐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여정이 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