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비용 상승 지적에도 많이 활용
독자 눈에 띄기 위한 중요 수단 인식
“띠지 있어야 더 예쁜 디자인 가능해”
작은 땅의 야수들
지난해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은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은 책 띠지도 눈길이 간다. 띠지 하면 떠오르는, 허리띠처럼 두른 직사각형이 아니다. 휘고 굽은 산맥의 결을 살려 만들었다. 그 뒤로 보이던 표지의 갈색 산맥은 띠지를 벗겨 보면 호랑이 등이다. 소설 첫머리에 나오는 ‘눈 덮인 깊은 산속 호랑이’와 이어진다. 띠지가 팝업북에서 주로 쓰는 일종의 가림막 역할도 한 셈이다.
출판계에서 ‘띠지’ 찬반은 해묵은 논쟁거리다. 출판사로선 표지엔 담기 어려운 홍보 문구를 넣을 수 있어 대다수 책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책 제작 비용만 상승시키는 거추장스러운 도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최근엔 ‘작은 땅의 야수들’처럼 띠지를 재해석해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게 아니라 책의 필수 부속품처럼 만드는 것이다.
띠지를 활용해 한 권의 책을 두 가지 버전처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말 나태주 시인 등단 55주년을 기념해 나온 필사책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열림원)는 띠지로 책의 4분의 3 이상을 덮어 멋진 그림표지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띠지를 벗기면 나 시인의 시 ‘행복’이 숨어 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요즘엔 띠지가 책 디자인을 해치지 않게 하는 건 물론이고 띠지가 있어야 더 예쁜 디자인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무지개출간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띠지의 재발견으로 출판계에서 호평받는 작품은 여럿 있다. 그림책 ‘할아버지가 사랑한 무지개’(쥬쥬베북스)는 표지 한복판에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이 놓여 있다. 언뜻 표지처럼 보이지만 띠지다. 작품 속 주인공이 할아버지 다락방에서 발견한 무지개 깃발을 띠지로 만들었다.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주기율표를 읽는 시간’(동아시아)은 책을 감싸고 있는 두툼한 띠지를 펼치면 한눈에 볼 수 있는 주기율표로 변신한다.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포스터처럼 크게 활용할 수 있다. 사계절 출판사의 ‘욜로욜로 시리즈’ 역시 띠지를 펼치면 포스터가 된다. 독특하게 접어 올린 띠지 겉면엔 다양한 개성의 타이포를 새기고, 안쪽엔 각 책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인쇄했다. ‘안상수체’로 유명한 안상수 디자인학교 학생들과 협업해서 제작했다고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국내에서 띠지는 2000년 초중반 북디자인 경쟁이 시작될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15년 무렵 도서정가제가 도입될 때 띠지를 재해석한 실험작이 많이 나왔다”며 “환경을 생각해서 (띠지를) 없애자는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출판사로선 독자의 눈에 띄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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