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자민 버튼’에서 주인공 벤자민은 목제 인형을 분신처럼 활용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찢어지는 기차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아르데코풍 전등 아래로 구부정한 노파가 선다. 한 아이가 자신을 ‘벤자민’이라고 소개하며 다가가지만 치매에 걸린 노파 ‘블루’는 아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의 몸에 갇힌 벤자민은 과거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노파에게 기억을 돌려주고자 그녀와의 인생을 담은 극중극을 펼치기 시작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1일 초연된 창작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이렇게 시작된다. 1920년대 미국,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단편 소설을 재창작했다. “블루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삶의 의미”였다는 벤자민의 회상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과 운명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벤자민 역은 그룹 동방신기 멤버 심창민과 김재범, 김성식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2003년 가수 데뷔 후 처음으로 뮤지컬 도전에 나선 심창민은 22일 공연에서 안정적인 보컬로 배역을 소화했다. 소년 시절의 맑고 순수한 목소리에서 점차 무게감을 더해감으로써 세월의 흐름이 자연스레 묻어나도록 했다. 재즈클럽 사장 ‘마마’ 역은 김지선이 맡아 재치 있는 연기와 간드러진 기교로 주인공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벤자민이 사랑하는 재즈 가수 블루 역은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이 맡았다.
재밌는 건 극중극 속 노인에서 아이로 어려지는 벤자민의 모습은 배우가 아닌 ‘목제 퍼핏’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벤자민 역 배우는 자신의 대사에 맞춰 직접 퍼핏을 움직이거나 입을 벙긋거리게 한다.
다만 극중극으로 진입하고 빠져나오는 경계가 불분명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점은 아쉬웠다. ‘인생의 황금기는 다름 아닌 지금’이라는 작품 주제는 괴리감을 주는 이질적 대사, 모호한 연출 등으로 인해 명료히 드러나지 않는 듯했다. 다음 달 30일까지, 7만∼1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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