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출판사 대표는 마케팅 담당 부서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올 2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서점 3사가 온라인 무료배송 기준을 주문가 기존 1만 원에서 1만5000원, 배송비는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린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이 출판사 대표는 “배송기준과 배송비 인상으로 독자가 저렴한 책을 샀을 때 오히려 더 비싼 돈을 내고 있다”며 “독자 반응에 따라 신간 정가를 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출판계에 이른바 ‘1만6800원 경제학’이 떠오르고 있다. 서점이 배송기준을 올리면서 책을 단 한 권만 샀을 때 정가가 1만6800원에 미치지 못하면 독자가 배송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에 따라 온라인에서 책값은 최대 10%까지 할인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정가 1만6800원 책은 온라인에서 10% 할인된 1만5120원에 살 수 있다. 무료배송 기준인 1만5000원 이상이라 배송비를 내지 않는다. 반면 정가 1만6600원 책은 10% 할인해 1만4940원에 산다. 무료배송 기준에 미달해 배송비 2500원을 더 내야 한다. 총 결제금액은 1만7440원으로 싼 책을 샀을 때 돈을 더 낸다. 정가 1만6700원 책도 10% 할인하면 1만5030원이지만 가격을 ‘짝수’로 정해야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출판계의 암묵적인 공식이 반영됐다.
베스트셀러엔 무료배송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 많다. 실제로 지난달 마지막 주 알라딘 종합 10위에 든 도서 중 8개가 무료배송 기준에 못 미친다. 대표적으로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7위)는 1만6000원, 산문집 ‘이적의 단어들’(김영사·9위)은 1만4800원, 만화 ‘원피스 105’(대원씨아이·10위)는 5500원이다.
신간 정가를 1만6800원으로 정하는 흐름은 이미 대세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달 출간된 신간 중 정가가 1만6800원인 책은 100종이다. 지난해 5월(46종)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배송기준이 바뀐 올 2월 기준으로도 상승세가 드러난다. 정가 1만6800원인 책은 올 1, 2월 각각 36, 44종이었다. 하지만 올 3, 4월엔 각각 99, 117종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출간 책 중 정가 1만6800원인 건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창비), 소설집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현대문학), 에세이 ‘형사 박미옥’(이야기장수), 에세이 ‘아니 에르노: 이브토로 돌아가다’(사람의집) 등 문학 에세이 분야가 눈에 띄었다. 다른 출판사 대표는 “문학과 에세이는 독자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 대세라 가격이 1만 원 중반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무료배송 기준 인상으로 문학 에세이 출판사 반응이 가장 크다”고 했다.
책값 인상이 출판계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영화관이 티켓값을 올렸다가 관객 반발을 산 것처럼 소비자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료 회원에게 책 무료배송을 제공하는 ‘쿠팡’에서 많이 팔리는 ‘어린이책’은 책값 인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웹소설, 웹툰 등 무료나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책값에 대한 저항감이 늘어났다”며 “책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담거나 소장욕을 극대화해 고급 콘텐츠로서의 장점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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