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미술관[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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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미술 여행
로마 유적 가득한 고대도시 아를… 명소로 떠오른 ‘루마 아를’ 뮤지엄
안도 다다오의 이우환 미술관 등 고흐의 그림따라 론강-카페 여행
흔적 남은 세잔의 아틀리에를 지나, 생트빅투아르산 스케치도 해볼만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개관한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마(LUMA) 아를 뮤지엄’.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와 아를의 고대로마 원형경기장을 모티브로 한 현대 건축물이다. 아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개관한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마(LUMA) 아를 뮤지엄’.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와 아를의 고대로마 원형경기장을 모티브로 한 현대 건축물이다. 아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아를은 로마 원형경기장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로마 유적이 즐비하다. 또한 ‘빛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5개월간 머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곳이다. 최근에는 고흐의 그림을 모티브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마(LUMA) 아를’이 문을 열었고, 한국의 이우환 화백(86)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도 개관했다. 고흐와 세잔의 숨결이 살아 있는 프로방스로 미술 여행을 떠나보자.》

“Starry, Starry Night∼”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론강의 밤 풍경.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론강의 밤 풍경.
아를 시내를 흘러가는 론강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돈 매클린의 팝송 ‘Vincent’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봄철 프로방스 지역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거센 미스트랄 바람에 론강의 강물이 파도치는 것처럼 일렁이는 밤이었다. 초저녁 하늘에는 샛별이 낮게 떠 있고, 뭇별이 반짝 거렸다.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기다란 그림자를 그려놓았다.

● 고흐의 그림 따라 아를 여행
고흐, 모네, 세잔 등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인상파 화가들이 살던 프랑스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바로 그림을 그렸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를 시내 곳곳에서 고흐가 걷는 모습이 새겨진 길바닥 동판을 따라가면 고흐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35세의 고흐는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약 15개월간 머물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 병원의 정원’ ‘고흐의 방’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유화 200여 점을 그렸다.

고흐와 고갱이 함께 살았던 노란집.
고흐와 고갱이 함께 살았던 노란집.
고흐가 고갱과 함께 살았던 노란집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부서졌으나, 그림 속 다른 건물과 기찻길은 현재도 그대로다. AD 90년 로마시대에 세워진 원형경기장에서는 요즘도 투우 경기가 열린다. 올 4월 초에 찾았을 때도 오랜만에 열린 투우 페스티벌로 온 도시가 떠들썩했다. 아레나 앞에는 고흐가 그린 투우 경기장 그림 속에는 고흐가 ‘아를의 여인’이란 제목으로 그린 지누 부인의 얼굴이 또렷하다. 발걸음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부치러 다녔던 시청 앞 광장 우체국을 지나서 포룸 광장으로 향한다.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포룸 광장의 카페.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포룸 광장의 카페.
고대로마 시대 도시의 각종 행사가 벌어졌던 이 광장 한쪽에는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카페가 있다. 고흐는 따뜻한 불빛 조명이 비친 벽을 노랗게 그렸는데, 푸른색 밤하늘의 별과 대조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재도 ‘반 고흐 카페’로 영업 중인데, 그림 속처럼 벽을 온통 노랗게 칠하고 조명까지 복원해 놓았다.

함께 살던 고갱이 다툼 끝에 파리로 돌아가버린 크리스마스이브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 휴지에 싸서 한 여인에게 선물로 준다. 고흐는 결국 동네에서 쫓겨나 생레미 정신요양원으로 이송된다. 고흐가 귀를 치료했던 아를 시립병원 2층에서 그는 정원을 그렸다. 지금은 ‘에스파스 반 고흐’라는 기념관이 된 이곳에서 정원의 분수와 꽃밭, 노란색 기둥을 쳐다보며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아를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생레미 정신요양병원이었던 생폴드모솔 수도원이 나온다. 고흐는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물렀는데, 아침에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밤하늘의 별빛이 파도처럼 흘러가는 그림이다. 정원에는 고흐가 병원에서 그린 그림을 보며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중엔 고흐가 동생 테오 부부가 조카를 낳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그렸던 ‘꽃이 핀 아몬드 나무’도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봄날의 프로방스 풍경이 담겨 있었다.

●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닮은 미술관
요즘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은 2021년 6월 개관한 ‘루마 아를’ 뮤지엄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었던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신작이다. 외벽에 1만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벽돌처럼 쌓아 올린 4개의 은빛탑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하늘로 솟아올라 간다.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타오르고 있다. 금속 패널 군데군데 창문 모양의 유리박스 56개가 달려 있다.

외벽은 햇빛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면모하는데, 특히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환상적이다. 건물의 푸르스름한 외관은 고흐의 그림 속 밤하늘이 되고, 오렌지색 조명이 들어온 창문은 맴도는 별빛이 된다. 아랫부분 원통 모양의 유리 건물인 드럼(Drum)은 아를의 로마 원형경기장을 모티브로 했다.

이곳은 1938년부터 프랑스의 국영철도회사(SNCF)가 소유하던 철도 보관소였는데, 현재는 정원과 전시공간, 예술가 작업실, 호텔, 카페 등이 지어졌다. 루마 아를 내부 로비에는 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이 있다. 작가 카르슈텐 횔러의 작품으로, 자칫 엄숙해질 수 있는 박물관에서 웃음을 주는 장치다.

루마 아를 9층 테라스에는 프로방스산맥과 론강, 습지를 볼 수 있는 파노라믹 뷰가 펼쳐진다. 1층 로비에 있는 ‘드럼 카페(Drum Cafe)’에서는 동서양의 퓨전음식을 즐길 수 있는데, 천장에 빨강 초록 노랑 등 각종 배관이 노출돼 있다. 파리의 퐁피두센터 외관을 보는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아를 이우환 미술관 1층에 전시된 돌과 철로 된 ‘관계항’ 작품.
아를 이우환 미술관 1층에 전시된 돌과 철로 된 ‘관계항’ 작품.
아를 시내에 2022년 4월에 문을 연 ‘이우환 미술관’도 핫플레이스다. 일본 나오시마,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어 아를에 세 번째로 지어진 이 화백의 세 번째 작품 전시공간이다. 16∼18세기 3층 대저택 ‘오텔 베르농(Hotel de Vernon)’을 개조해서 만든 미술관이다. 미술관 1층과 야외 테라스에는 돌과 철로 구성된 ‘관계항(Relatum)’ 작품 10점이 설치돼 있고, 2층에는 점과 선으로 이뤄진 회화 작품 30점이 전시돼 있다. ‘점 하나 찍으면 1억 원’으로 불리는 이 화백의 대형 작품을 이렇게 많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곳에는 이 화백의 친구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의 콘크리트 작품도 있다.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두운 공간의 끝까지 들어가면 발밑에 하늘이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 세잔이 그렸던 사과와 정물이 그대로 놓여 있다.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 세잔이 그렸던 사과와 정물이 그대로 놓여 있다.
아를이 고흐가 사랑한 도시였다면, 엑상프로방스는 폴 세잔(1839∼1906)의 도시다. 도심 북쪽 고지대인 로브 언덕에는 세잔이 죽기 직전까지 사과를 그리던 아틀리에(Atelier Cézanne)이 있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작업실 가운데의 테이블에는 세잔 그림 속 사과와 물병, 접시가 지금도 그대로 놓여 있다. 또한 세잔이 입었던 물감 묻은 작업복과 모자, 석고상과 해골, 이젤과 팔레트, 모네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놓여 있다. 구석구석 세잔의 숨결이 느껴져 지금이라도 한쪽 문을 열고 세잔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세잔의 아틀리에 뒤쪽 언덕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화가들의 땅(Terrain des peintre)’이 나온다. 세잔이 사과와 함께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생트빅투아르산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지점이다. 세잔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뾰족한 산과 삼각형, 네모꼴 모양의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세잔처럼 수첩을 꺼내 생트빅투아르산을 펜으로 그리고, 수채물감으로 칠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입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가볼 만한 곳=프로방스의 대표적인 농산물은 올리브다. 아를에 있는 ‘마리위스 파브르(Marius Fabre)’는 1900년부터 4대째 천연 올리브 오일과 카마르그 습지의 소금 등 천연재료만으로 만드는 마르세유 비누의 명가다. 피부에 좋은 프로방스 전통 수제비누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로마 원형경기장 옆 레스칼라두(L’escaladou) 레스토랑에서는 부야베스(bouillabaisse)를 맛볼 수 있다. 지중해에서 잡은 생선에 양념을 넣어 끓인 수프에 우선 빵을 찍어 먹다 보면, 테이블에서 직접 뼈를 발라 접시에 담아준다. 40년째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손맛은 비린 느낌 하나 없는 프로방스 전통 생선요리를 맛보게 해준다.

아를·엑상프로방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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