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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그런 인간’인줄 모르고… 실패한 덕후들, 분노의 목소리

입력 2022-09-29 03:00업데이트 2022-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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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오세연 감독의 다큐영화 ‘성덕’
선망하던 스타가 성범죄자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돼 화제
“아이돌 팬덤 현상을 넘어 우상화 문제 짚어보고 싶었다”
‘성덕’의 오세연 감독(왼쪽)이 가수 정준영이 성범죄에 연루돼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2016년 단독 보도한 기자를 만나 사과하는 모습. 정준영의 열혈 팬이었던 오 감독은 보도 당시 해당 기자를 비판했다. 오드 제공
중학교 1학년 때부터 7년간 ‘오빠’를 좋아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팬 사인회에 한복을 입고 등장해 그를 놀라게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연모의 마음을 담은 자작시를 낭독했다. 오빠는 그런 그를 사인회 때 먼저 알아보고 반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 오빠가 전교 1등을 하라고 해서 정말 전교 1등을 했다. 오빠 말은 인생 지침이 됐다.

그런데 10대 시절을 다 바친 그 오빠가 2019년 성범죄자가 됐다. 문제의 오빠는 가수 정준영. 그는 집단 성폭행 혐의 등으로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28일 개봉한 ‘성덕’은 1999년생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오 감독을 포함해 각자 선망하던 스타 오빠가 성범죄자로 추락하면서 ‘실패한 덕후’가 된 팬들이 분노 등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인터뷰가 주축이다.

오 감독은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나 말고도 상처받은 팬들이 많고 여전히 그들을 옹호하는 팬들도 많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팬들은 한때 사랑했던 오빠를 ‘그런 인간’ ‘사회의 악’으로 지칭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 감독은 과거 빅뱅의 멤버 승리의 열혈 팬이었던 김다은 조감독과 함께 앨범 등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행위) 굿즈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을 치르며 과거 떨치기에 나선다.

한편에선 문제의 오빠들을 여전히 사랑하는 팬들이 남아있었다. 오 감독은 이 지점에서 카메라 방향을 태극기 집회 현장으로 돌린다. 정치 팬덤을 상징하는 현장으로 가 이들이 왜 이토록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지 사연을 들어본다. 다만 감독은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도 던지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낼 뿐,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다. 오 감독은 “아이돌 팬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우상화 문제를 짚어보는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실패한 덕후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동시에 이처럼 정치 팬덤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실패한 덕후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등 날카로우면서도 감성적이고, 단선적인 듯하면서도 입체적인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고 해서 팬들도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를 좋아했던 시절에 행복했다면 그걸로 성공한 거죠.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좋아해 봤다면, 상처받아 봤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받은 이들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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