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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단독]대한제국공사관 6곳중 3곳 안내표지도 없어…공동주택 사용도

입력 2022-08-09 03:00업데이트 2022-08-0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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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 내부 보고서
1893년 일본 도쿄 주일 조선공사관의 당시 모습. 국회도서관 제공
이한응 열사
“국가는 주권이 없어졌고 인간은 평등을 상실하여 모든 교섭은 치욕이 망극하다. 어찌 피 끓는 자가 참을 수 있는 일인가.”

1905년 5월 12일 영국 런던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당시 영국 주재 외교관이었던 이한응 열사(1874∼1905)는 국권이 상실돼가는 상황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는 국내에도 알려지며 이후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 열사가 떠난 지 117년. 그가 순국한 주영 대한제국공사관은 현재 36가구가 거주하는 공공임대아파트로 바뀌었다. 런던 켄싱턴구 얼스코트 트레보버 4번지에 있는 이 건물은 별다른 안내석도 없다. 공사관은커녕 이 열사의 순국 현장이란 사실조차 알 수 없다.

영국 런던의 옛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영구임대주택으로 바뀌어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독립기념관 제공
대한제국이 나라를 대표해 외국에 설치했던 해외 공관 6곳의 현재 실태가 모두 확인됐다. 2012년 매입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등 일부는 일반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전체 공사관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진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87년 주일 공사관을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 러시아, 프랑스, 청나라(중국)에 설치된 공사관 실태를 파악한 결과 6곳 가운데 3곳이 안내석도 없는 상태이며 한 곳은 건물이 아예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재단 내부 보고서 ‘재외공관 건축물의 문화재적 가치 검토’에 따르면 복원공사를 거쳐 2018년 재개관한 미국 워싱턴 소재 주미 공사관에 안내석이 세워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프랑스 파리에 있던 공사관에도 안내석은 있지만 주러 공사관은 현재 민간아파트로, 주불 공사관은 연립주택으로 각각 바뀌었다.

일본 도쿄 도심에 있었던 주일 대한제국공사관은 해외 공관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당시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특정 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본 국회도서관 등에서 공사관의 옛 지명주소와 당시 사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별다른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는 “공사관이 여러 차례 이동했고 해당 건물이 철거됐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명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다”라며 “여러 사료를 통해 추적이 가능한 만큼 기초 고증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주청 대한제국공사관 터로, 1915년 옛 건물이 철거되고 현재 3층짜리 은행 건물이 들어서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주청 대한제국공사관도 열악한 사정은 엇비슷하다. 1903년 중국 베이징 둥자오민샹(東交民巷) 거리에 설치돼 1905년까지 운영했던 주청 공사관은 1915년 건물 자체가 헐렸다. 현재는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지어졌고 은행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주청 공사관이었음을 알리는 안내석도 없고 후속 연구도 미진하다. 그나마 최근 외교부에서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관련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대한제국공사관이 가진 역사적 가치가 큰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한제국공사관은 세계 열강에 우리의 주권을 드러낸 첫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며 “이런 공간에 안내석조차 설치돼 있지 않다는 건 대한제국 외교사에 대한 기초 연구가 미진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재단 보고서에서는 당시 공사관들이 불리한 국제 정세에도 고군분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며 공사 6곳이 모두 폐쇄될 때까지 대한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사료에 따르면 공사 건물의 옥상에는 국기게양대를 만들어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입구 정문에도 태극기 문양을 새겼다고 한다. 공사관 내부에도 태극기를 달고 전통 공예품을 설치해 한국 문화를 알리려 노력했다.

윤소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한제국공사관에는 망국의 위기에도 주권을 지키려 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가 서려 있다.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그 흔적을 우리가 지키고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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