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일밤글’ 사무관 작가가 다잡은 ‘창작하는 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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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승 소설집 ‘근로하는 자세’ 다양한 공직자 희로애락 그려
“전업 나서면 돈에 쫓길 것 같아 하나라도 좋은 작품 쓰려고요”

민간기업에서 일하다가 시청 공무원이 된 ‘꽁지머리’ 상사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직원’으로 뽑힌 뒤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다. 그러나 새로운 데 도전하는 그의 성향은 끝내 ‘공무원화’되지 못한다. 결국 조직문화에 좌절한 상사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사표를 쓴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현직 국가보훈처 사무관인 이태승 작가(36·사진)가 12일 펴낸 단편소설집 ‘근로하는 자세’(은행나무)에 수록된 단편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의 줄거리다. 단편 8개로 구성된 신간은 중학교 선생님, 국립묘지 직원, 시청 공무원 등 공직자들이 조직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흥미롭게 그렸다.

그는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비애, 뭉클함 등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게 저만의 ‘새로움’이라고 생각했다”며 입을 열었다. 작가는 일상 속 비애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책 제목과 같은 단편 ‘근로하는 자세’는 독일로 출장을 떠난 환경부 공무원들이 무장단체에 납치돼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테러범의 총에 맞아 막내 사무관이 사망한 후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비극이다. 평생 일에 빠져 산 차관은 대장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기러기 아빠 과장은 독단적인 성격 탓에 후배들과 멀어져 가정과 직장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일하면서 찾아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인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아요. ‘내가 일한 보람이 뭐였지?’를 가장 마지막에야 돌아보죠. ‘시스템에 종속된 내가 잃어버린 건 무엇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여운을 남기고 싶었어요.”

지난한 일상의 분투로 무뎌진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의 심리도 세밀히 묘사했다. 단편 ‘문 앞에서 이만’에서 무기력한 공무원 주인공은 자신과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상사를 철저히 피한다. 직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주인공은 맞선 상대에게 ‘한 번 더 보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단편 ‘오종, 료, 유주’에는 사내커플임을 숨기는 공무원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동성 커플이 연인임을 떳떳이 밝히는 걸 보며 자기 삶에 갑갑함을 느낀다.

“직장상사나 맞선 상대와의 관계에서 주인공들은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자신을 직시해요. 여자친구를 공개하지 않는 주인공을 통해선 비밀의 겹을 쌓고 자신이 누군지 고민하는 직장인의 단상을 그렸죠.”

이 작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사무관으로, 퇴근 후와 주말에는 소설가로 산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생 때부터 품은 창작욕이 소설이란 매개체를 만나 뒤늦게 피어난 만큼 의무감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저는 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할 겁니다. 전업 작가가 되면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글 쓰는 걸 못 즐길 것 같아요. ‘빨리 신작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천천히, 멀리 보려고 해요. 다작보다 좋은 작품 하나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태승 소설집#근로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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