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고름… 위대한 어머니… 역경 이겨낸 건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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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베토벤 콩쿠르 1위 서형민, 15일 자작곡 포함된 리사이틀
“가난과 싸운 어머니 헌신 감사… 줄곧 괴롭힌 염증도 많이 회복”

피아노 영재에서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작곡가와 지휘자로. 서형민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스테이지원 제공 ⓒJino Park
피아노 영재에서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작곡가와 지휘자로. 서형민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스테이지원 제공 ⓒJino Park
네 살 때 처음 간 미술학원에서 아이는 음표와 건반을 그렸다. 옆의 음악학원으로 옮겼다. 피아노도 잘 쳤지만 다음 해부터 오선지를 그려 곡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피아노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입학했고 TV 프로그램 세 곳에 영재로 출연했다.

피아니스트 서형민(32). 그를 1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5일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 첫 순서로 자신의 곡 ‘세 개의 피아노 소품’을 연주한다. 지난해 12월 독일 본 베토벤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다. 이 콩쿠르에서 그는 1등상과 3개 부문 특별상을 휩쓸었다.

“결선이 두 프로그램으로 열리는데 첫 결선에서 현대곡과 베토벤의 3중주곡을 연주하게 되어 있어요. ‘현대곡으로 제가 쓴 곡을 연주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주최 측과 심사위원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자작곡에 이어 베토벤 소나타 30번,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베토벤 콩쿠르 훨씬 이전부터 베토벤은 ‘신적 영역’에 있는 존재였다고 그는 말했다.

이 콩쿠르 전 이미 서형민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2016년 경남 통영에서 열리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3년 뒤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5년 만의 국내 무대를 가졌다. 2020년 1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도 열었다. 열 살 때 미국 매네스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국내 음악계와 학연의 끈은 사라졌지만, 마음이 맞는 음악가들과 현악합주단 ‘노이에 앙상블’을 창단해 지난달 데뷔연주를 지휘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뒤 두 가지 화제가 그를 따라다녔다. 하나는 그의 어머니다. 그는 지난해 공연 전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16세 때 상경해 봉제공장에 취직한 뒤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했고, 아들을 위해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네일숍과 세탁소에서 밤낮으로 일한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에 감사를 표했다.

서형민이 이겨내 왔고, 앞으로도 이겨내야 할 역경 중 하나는 그를 줄곧 따라다닌 손가락 염증이다. 손톱이 들뜨며 통증이 찾아왔고 때로는 고름이 찼다. 2016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 2019년 비오티 콩쿠르 준우승을 모두 그 고통과 싸우며 이겨냈다. 다행히 이제는 통증이 연주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본 베토벤 콩쿠르 우승으로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렸다. 올해 9월에는 콩쿠르 우승 혜택으로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독일에서 연주한다. “자작곡도 연주하고 지휘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더군요.”

10년, 20년 뒤 사람들은 그를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중 어떤 이름으로 기억할까.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일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피아노에 주력하면서 다른 기회가 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작곡에 대한 열정은 분명하고요.”

야심작이 될 피아노협주곡도 12년째 ‘끄적거리고’ 있다. 그는 러시아 근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연상시키는, 듣기 어렵지 않은 곡이 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본 베토벤 콩쿠르 1위#서형민#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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