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된 이들의 빛과 그늘 풀어낸 사진집 [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8일 19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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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의 김녕만 작가가 1979년부터 최근까지 열 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찍은 사진집이 나왔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퇴임 후, 청와대에서 현직에 있는 대통령 등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한 열 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로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뉴스에 나오는 전형적인 사진을 벗어났고 대통령을 한 인간으로 보고, 화려한 이면의 고뇌와 고독까지 담은 사진들이다. 극도로 제한된 장소와 시간 안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우연, 그 틈과 여백을 포착한 순간들이 눈길을 끈다.





커다란 집무실에서 대통령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염색한 검은 머리가 점점 흰머리로 변해가는 모습, 활기차게 들어왔다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서는 쓸쓸한 모습 등, 세상의 어떤 일이나 시작과 끝은 있기 마련이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물러가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더 극적이다. 더구나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뿐 아니라 세상과 이별하는 마지막 모습은 더욱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갑작스러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어서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이 떠났고 최근에는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이 운명을 달리했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에 가기도 했다. 한편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당시 문재인 장례운영위원장은 그로부터 8년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임을 사진으로 증언한다. 대통령 선거로 달아오르고 있는 2022년 새해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는 사진집이다.

사진집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1부는 역대 대통령의 등장과 퇴장에 초점을 맞추었고 2부는 김녕만 작가가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로서 찍은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을 통해서 대통령이란 자리의 영광과 고뇌, 화려함과 고독, 빛과 그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는 1979년에 동아일보 새내기 기자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행렬을 구경하는 인파를 촬영하면서 권력무상을 실감했다. 철옹성이라 여겼던 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을 목도하면서, 그것도 비극적인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권력무상에서 나아가 인생무상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등장과 결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는 기자를 떠나 사진가의 눈으로 조금 더 깊이 있게 권력의지와 권력무상을 표현해보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김녕만 사진의 특징인 해학과 페이소스는 이번 대통령 사진에서도 잘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선거유세 중에 허리를 굽혀 연단 아래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눌 때 밑으로 떨어질세라 뒤에서 문 후보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사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서로 김영삼 대통령의 옷소매를 잡아끄는 겁 없는(?) 어린이들, 분장을 하며 대본을 외우는 배우처럼 얼굴을 다듬으면서 연설문을 살펴보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 등은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낸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백악관 만찬장에서 바지가 흘러내리면서 하반신을 노출한 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 사진이다. 르윈스키 성 스캔들로 파문을 일으킨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깜짝 퍼포먼스를 벌인 고 백남준 아티스트의 과감하고 짓궂은 돌발행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순발력이 돋보인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5년 시한부이다. 전직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에 현직 대통령이 앉아 있는데, 이 의자 또한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게 될 것임을 같은 위치에서 찍은 두 대통령의 집무실 사진이 암시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사진 찍는 일은 그동안 수많은 기자들이 수행해왔던 일이다. 그러나 기자를 그만 둔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하여 이렇게 일관된 주제를 갖고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일은 어렵고 드문 일이다. 특히 늘 매체에서 접하는 공식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가의 시각이 들어간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한 사진가의 40년 공력(功力)이 역사의 한 부분을 오래 남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한다.

전시회는 8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20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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