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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인생 변곡점마다 객석으로…관객과 함께 찾아가는 진정한 행복

입력 2021-12-21 13:49업데이트 2021-12-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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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사방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텅 빈 무대. 배우 한 명이 홀연히 나타나 한가운데 서더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일곱 살 때 기르던 애완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이야기부터 어머니의 우울증과 자살시도까지.

인생 변곡점마다 그는 객석으로 다가가 한 관객에게 ‘잠시 이 역할을 맡아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배우의 요청을 받은 6, 7명의 관객은 그의 이야기 속 연인, 선생님, 아버지로 잠시 변신해 기꺼이 인생 여정에 동참한다. 막이 오를 때까지 미완성 상태였던 1인극은 관객의 참여와 함께 비로소 다인극으로 완성된다.

3일 개막해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 연말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중한 삶의 순간을 목록으로 만들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영국의 유명 극작가 던컨 맥밀란의 원작을 각색했으며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에 이은 재연이다.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주인공은 빛나는 삶의 순간을 뭐든 기록한다. 1번 아이스크림, 2번 물싸움, 3번 혼자 몰래 보는 TV, 4번 물방울 무늬 양말…. 그는 삶의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잊고 지내던 리스트를 다시 꺼낸다. 가치 있는 순간을 계속 채워 내려갔고, 리스트는 100만 개까지 늘어난다.

물론 리스트만 적는다고 그가 진정한 행복을 찾은 건 아니다. 위기 때마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극에서는 ‘관객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배우가 ‘진짜 행복이 뭘까요’,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즉석에서 배우가 된 관객은 자신의 인생철학, 행복론을 들려준다. 배우는 이 말을 곱씹으며 대화하고 다시 극을 이어간다. 배우, 제작진이 “관객의 말을 매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어두고 싶을 정도”라며 관객 참여 부분을 작품의 매력으로 꼽는 이유다.

주인공의 이름은 극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나’라고만 지칭할 뿐. 나와 상관없는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사처럼 들리던 이 작품은 극이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전석 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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