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에 물린 증상 비슷” 고양이 그려 ‘콜레라 부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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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博 ‘선조들의 역병 대처법’
천연두 유행하자 혼례식 미루고, 전쟁 때처럼 타지역으로 피란도
홍역 열 낮추려 ‘승마갈근탕’ 조제… 신라 나병약, 현재와 성분 비슷해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역병, 일상’ 특별전에 천연두를 부르는 마마신을 달래기 위한 짚말 등이 전시돼 있다. 조선인들은 짚말에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올리고 불에 태우는 굿판을 벌였다. 오른쪽 사진은 콜레라를 쫓으려고 대문에 붙이던 고양이 부적을 묘사한 그림. 김동주 기자 zoo@donga.com·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역병, 일상’ 특별전에 천연두를 부르는 마마신을 달래기 위한 짚말 등이 전시돼 있다. 조선인들은 짚말에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올리고 불에 태우는 굿판을 벌였다. 오른쪽 사진은 콜레라를 쫓으려고 대문에 붙이던 고양이 부적을 묘사한 그림. 김동주 기자 zoo@donga.com·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울타리 밖 인가에서 전염병에 걸린 자가 있어 사흘간 앓았다. 그의 부인은 도망갔다고 하므로 염려스러웠다. 붉은 글씨로 ‘(벽,피)瘟’(벽온·역병을 피함)이라고 써서 창문에 붙였다.’

조선 중종 때 문신 묵재(默齋) 이문건(1494∼1567)이 1535년부터 17년간 쓴 묵재일기(默齋日記)의 1547년 1월 26일 기록이다. 부인마저 남편을 버리고 도망갈 만큼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역병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곤 주술적 의미의 글씨 쓰기뿐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감염병 와중에 일상을 영위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은 ‘역병, 일상’ 특별전을 24일 열었다. 조선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 있는 묵재일기를 비롯해 정조 때 무관 노상추(1746∼1829)가 176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기록한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등 약 350점을 선보인다. 한글 번역을 마친 묵재일기와 노상추일기 원본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전시자료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결혼이 연기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상추는 1767년 4월 25일 일기에 ‘김순을 만나 혼사를 의논했는데 내가 두창(천연두) 때문에 속히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가을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앞서 4월 17일 노상추가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퍼진 사실이 알려졌다. 노상추는 감염을 우려해 여동생의 혼인을 주선한 김순과 만나 혼례를 미루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여동생은 천연두에 걸려 발병한 지 보름 만인 6월 30일 숨을 거뒀다.

마치 전시처럼 피란을 떠나기도 했다. 경남 고성군에 살던 구상덕(1706∼1761)이 쓴 일기 승총명록(勝聰明錄)에 따르면 1748년 1월 그가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퍼졌다. 이에 구상덕은 자신의 부모를 경북 갈산의 누이 집으로 긴급히 피신시켰다. 구상덕 자신도 앞서 1740년 역병이 발생했을 때 제자 집으로 몸을 피했다.

조선인들이 감염병 사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감염병 치료를 위한 약제 개발도 이뤄졌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등 각종 의학서에는 천연두나 홍역 증상인 열을 낮추기 위해 미나리아재빗과 승마(升麻), 갈근(葛根·말린 칡뿌리) 등을 달인 승마갈근탕 조제법이 담겨 있다.

감염병에 얽힌 풍속도 눈여겨볼 만하다. 1889년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1842∼1893)가 남긴 조선기행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콜레라에 걸리지 않으려는 염원을 담아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였다. 콜레라 증상이 쥐에 물렸을 때와 비슷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충북 청주시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서 개최된 ‘기록으로 본 치유와 염원’ 특별전에 전시된 9세기 일본 의학서 대동유취방(大同類聚方) 내용도 주목된다. 이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나병(癩病) 치료제로 물개 지방을 이용한 연고를 개발해 사용했다. 이 연고는 분석 결과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나병 치료제와 화학 성분이 거의 같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팬데믹 대응
▲남편이 발병한 지 사흘 만에 그를 버리고 도망간 부인(이문건의 ‘묵재일기’)
▲마을에 천연두가 번지자 여동생의 혼사를 미룬 오빠(노상추의 ‘노상추일기’)
▲천연두를 피해 부모를 누이 집으로 피신시킨 아들(구상덕의 ‘승총명록’)
▲콜레라 증상이 쥐에 물렸을 때와 비슷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임(샤를 바라의 ‘조선기행’)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콜레라 부적#역병 대처법#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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