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장애 공시생 그린 ‘유미업’… “고개 숙인 청춘에 ‘괜찮다’ 말해주고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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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공개된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은 약 2주간 소셜네트워크상에서 화제였다. 발기부전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굉장히 도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재가 전부인 드라마는 아니다. 발기부전은 여러 번의 공무원시험 탈락으로 자존감이 바닥난 30대 청년 도용식(윤시윤)의 극한 상황을 비유할 뿐. 드라마는 그런 용식이 첫사랑이자 비뇨기과 의사인 루다(안희연), 친구 꽃보살(김설진)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모습을 응원하게 되는 따뜻한 작품이다.

작품은 용식의 변화를 따라가기에 윤시윤(35)의 연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14일 화상으로 만난 윤시윤은 자위를 하다 발기부전임을 깨닫고 충격 받는 장면을 두고는 “가장 어려웠던 연기다. 목숨 걸고 한 큐에 가고 싶었다”면서도 “주제가 갖는 힘이 있어 참여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고 했다. 거북목과 굽은 어깨마저 연기한 윤시윤은 회차를 거듭하면서 웅크린 몸을 조금씩 펴나가며 용식의 회복을 보여준다.

“나만의 공간에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고,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고, 사랑을 이뤄나가는 순서를 능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윤시윤의 말은 작품의 주제를 정확히 관통한다. 모지혜 작가(33)는 용식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모 작가는 스무 살부터 습작생, 당선작가, 보조작가를 반복했다. 그는 “저는 안정적인 취업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용식에 가까웠다. 그때 한 자기 계발서를 읽었는데 혼나는 느낌이었다. 나를 예뻐하고 싶다가도 그런 글을 읽다보면 고개를 숙일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작품도 5년 전 4부작 아이템으로 만들어놓은 ‘서다’를 원작으로 한다. SBS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이 당시 입봉작으로 준비하다 무산됐고, 그 후로도 매년 제작제의가 왔지만 좌초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이 작품을 다시 기억하고 꺼내든 건 김장한 감독(35)이었다. ‘서다’를 준비하던 시절 조연출이었던 김 감독은 “이 대본보다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무게감에 재미를 더했다.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소재나 장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소품을 준비했다”는 그의 말마따나 발기부전 검사를 받기 위해 엎드린 자세를 대체한 고양이 모형, 어린 환자 무릎 위에 있던 고래 인형, 바람 빠진 풍선 등 재치있는 미장셴은 불쾌함을 유쾌함으로 전환시킨다. 음악도 “파격적인 소재라 연출에서 최대한 힘을 빼려 했다”는 이유로 톤 다운된 곡이 주가 됐다. 감독은 요아리, 천단비에게 직접 OST를 제안했는데, 작품 주제처럼 실력에 비해 빛을 못 보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품의 제목이자 유명곡인 ‘You Raise Me Up’은 극중 딱 한 번, 감독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나온다. 분홍색 마니아인 용식을 보고 납치범으로 오해한 경찰과 주민들이 무서워 집안으로 숨은 용식이 스스로 나와 결백을 주장하는 장면에서다. 김 감독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깨고 일어서는 용식을 표현하고 싶어 원작의 옥탑방 설정을 반지하로 바꿨다”고 했다.

그렇게 서서히, 결국 우뚝 선 용식이 결정한 건 공무원 시험 포기다. 타인의 재단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감정을 찾은 용식은 마지막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는다. 가만히 그 웃음을 보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시청자에게 작가와 배우는 말한다.

“응원해준 주변의 기대를 떨치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모 작가) “괜찮아요. 오늘 맛있는 것 드시고요. 좋은 사람들이랑 수다 떠세요.”(윤시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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