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생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8-28 03:00수정 2021-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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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유서/요슈타인 가아더 지음·손화수 옮김/196쪽·1만3800원·알에이치코리아
먼 옛날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가 숲속을 헤매다 오두막을 발견했다. 빈 오두막에서 소녀는 죽 세 그릇이 놓인 식탁을 발견하고 이 중 온도가 가장 알맞은 세 번째 그릇을 맛있게 먹어 치운다. 식사를 마치고 피로가 몰려오자 세 개의 의자 중 가장 편안한 의자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어 세 개의 침대 중 가장 잘 맞는 침대에서 잠이 든다. 잠에서 깬 골디락스를 맞은 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집 주인 ‘세 마리 곰’. 골디락스는 곧바로 멀리 도망친 뒤 오두막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 짧은 이야기는 서구권에서 ‘세 마리 곰’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설화다. 철학을 주제로 한 소설 ‘소피의 세계’의 저자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요슈타인 가아더는 이번 신작 소설에서 골디락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주인공인 알버트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추억이 깃든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은 그가 아내 에이린과 연애하던 시절 우연히 발견해 주방을 쓰고 하룻밤을 묵은 곳. 책은 그가 오두막에서 이틀에 걸쳐 쓴 유서로 이뤄져 있다.

알버트는 오두막에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며 삶과 죽음, 질병과 공포에 대해 사유한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은 결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오두막을 둘러싸고 풍기던 퀴퀴하고 달짝지근한 냄새는 오랜 생명이 썩어 들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는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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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해설을 쓴 철학자 강신주는 “가아더의 이 묘한 소설은 두 번 읽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적었다. 알버트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독자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소설에서 알버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제 독자들을 향한다.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왔다. 나는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시간을 살아내야 할까? 아니면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게 더 나을까?”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불치병#삶#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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