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위기관리 천재’ 세종은 팬데믹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8-21 03:00수정 2021-08-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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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김준태 지음/268쪽·1만6000원·민음사
동아일보DB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조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이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피해 예방과 구휼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큰비가 내리면 수재 발생이 우려되는 곳을 신속히 점검했다. 예컨대 여러 날에 걸쳐 비가 내릴 때는 수문을 열어 배수를 원활히 한 뒤 밤새 관원들이 현장을 순시하도록 했다. 겨울에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지면 “강의 얼음이 얇아져 사람이 빠질까 염려된다”며 각 나루터에 얼음을 깨라는 지시를 내렸다.

흉년이 든 지방의 수령에게는 구휼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느라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되 비상시에는 현장 지휘관에게 결정권을 위임한 것. 세종의 통치 행태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상황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은 조선 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복기하는 일종의 ‘기출 문제집’을 표방하고 있다. 역사 사례를 현대의 경영학 관점으로 재구성해 위기관리에 관한 통찰을 준다. 이를테면 세종이 토지 조세제도인 공법을 개혁하기에 앞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을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 에드워즈 데밍(1900∼1993)의 ‘PDCA 사이클(계획-실행-점검-조치)’ 이론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조세제도 개선에 반영한 세종의 정책 추진이 지속적인 업무 피드백을 통해 성과를 개선하는 PDCA 방식과 닮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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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왕인 세조(재위 1455∼1468)는 외교 분야의 위기관리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그는 당시 국경지역에서 조선을 위협해 오던 여진족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조선에 우호적인 부족은 확실히 보상하고 위협적인 부족은 정벌에 나서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또 1460년 신숙주를 필두로 한 정벌에 성공한 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방어체계 확립에 만전을 기한 것.

반면 제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우를 범했다. 그는 외부 환경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이른바 ‘통제 환상(illusion of control)’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인조는 쇠락해 가는 명나라와 부상하는 청나라 사이에서 명의 편을 들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비극을 겪었다. 전쟁 후에는 피해를 복구하고 대응체계를 정비하기는커녕 누구 잘못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따지는 데만 급급했다.

현실에서의 지혜를 얻기 위해 조선시대 역사를 뒤적이는 게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지나간 것을 살펴 다가오는 것을 밝힌다’는 한(漢)대 학자 동중서(董仲舒)의 말에 공감한다. 생활양식과 과학기술의 수준과 관계없이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 원리는 변함이 없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세종#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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