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 걱정에 접어둔 꿈… 망(亡)한 뒤 망(望) 찾았다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7-13 14:52수정 2021-07-1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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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먹고 살 걱정에 꿈은 항상 접어뒀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가 파산했다. 처음으로 인생이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 왔다. 항상 꿈꿔왔던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스물아홉 살에 대학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망할 망’(亡)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었던 ‘바랄 망’(望)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예대 문예학부에 시간제로 재학 중인 황윤선 씨(30·여)가 쓴 에세이 ‘그래서 나는 무엇을 했나’의 내용이다. 12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만난 황 씨는 “나 같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보단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루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며 “누군가는 자신밖에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용기라 부르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우리 세대는 기술과 경제 발전으로 누리는 것도 많지만 힘들다”며 “고민을 진지하게 풀어내기보단 ‘피식’ 웃으며 해학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황 씨 등 서울예대 문예학부 학생 5명이 자신들이 쓴 에세이를 담은 에세이집 ‘이번 책은 망했다’(망)가 지난달 10일 출간됐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출판사를 차린 뒤 낸 책이다. 1991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MZ세대가 모여 자신의 삶에서 망했던 일과 의미, 이후의 삶을 담았다. 박인기 씨(21)는 고등학생 시절 당하던 학교폭력을 버티다 못해 끝내 학교를 그만뒀다. 강민경 씨(22·여)는 대학 과제를 늦게 제출하는 사소한 실패에도 한껏 우울해져 절망하곤 한다. 황 씨는 “MZ세대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선택지에 길을 잃고 방황한다”며 “결국 우리 세대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묻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실패한 경험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실패에 맞선다. 정혜성 씨(25)는 시험을 못 본 이후로 항상 텀블러를 가방 왼쪽에 넣고, 곰이 그려진 뚜껑이 덮인 향수를 뿌리고, 노란색 양말과 검은색 신발을 신는 유별난 규칙을 만들었다. 김준아 씨(22·여)는 서울예대에 입학하기 위해 3번의 수시와 2번의 정시 등 5번의 입시 과정에서 떨어졌지만 6번째 입시과정에서 도전해 합격한 뒤 환호한다. 김 씨는 줌 인터뷰에서 “안정적이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들어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고집을 꺾지 않았다”며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도 우리 세대의 특성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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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를 담당한 김효선 씨(25·여)는 삶이 망한 뒤 정처 없이 방랑한다는 뜻의 캐릭터 ‘망랑이’를 만들어 삽화로 넣었다. 황 씨는 “겉으론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웃고 있는 망랑이의 모습엔 절망에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은 MZ세대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망한 기억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우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당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MZ 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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