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산악회 아재가 부른 팝송에 왜 빠졌나

뉴시스 입력 2021-07-03 05:25수정 2021-07-0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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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길·정광용 두 아저씨 팝 커버곡에 열광
유튜브 콘텐츠 '한사랑산악회' 멤버로 익숙
해외 퍼져나가며 유명 래퍼 스눕독도 지지
커버곡 성공 공식 정반대 방식으로 대성공
아재스러운 무대 매너와 노래로 MZ 저격
미국의 전설적인 래퍼 스눕독(Snoop Dog·50)은 최근 한국 가수를 ‘샤라웃’(shout out·언급하다는 뜻으로 힙합 음악계에서 주로 쓰임)했다. 그가 언급한 가수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한국 힙합 뮤지션도 아니었다. 방탄소년단도 아니었다. 바로 배용길과 정광용이었다.

어딘가 친숙한 이름의 이 듀엣은 최근 유튜브 콘텐츠 중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한사랑산악회’에서 탄생했다. 김영남·이택조와 함께 이 산악회에 소속돼 있는 배용길과 정광용은 지난달 저스틴 비버의 메가 히트곡 ‘피치스’(Peaches)를 커버해 유튜브에 올렸다. 이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해외 이용자에게 전파됐고, 스눕독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스눕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6195만명, 스눕독이 올린 게시물엔 1만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 중 다수가 이렇게 말한다. ‘원곡보다 낫다(better than original).’

이 영상은 ‘한사랑산악회’ ‘05학번 is back’ ‘B대면 데이트’ 등 최근 유튜브 채널 중 가장 많은 팬을 만들어내고 있는 ‘피식대학’이 내놓은 새로운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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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산악회’ 멤버인 배용길은 젊은 시절 미국에 이민 갔던 경험이 있어 영어에 익숙한데다 서울에서 LP바를 운영할 정도로 팝 음악을 잘 안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인 정광용은 어린 시절 수재로 불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영어 해석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한다. 그런 두 사람이 최근에 듣고 좋아하게 된 노래 ‘피치스’를 커버한 것이다.
지난달 14일에 올라온 이 영상은 조회수 420만회를 넘겼다. 댓글은 1만1000개 넘게 달렸다. MZ세대는 산악회 아저씨들이 부른 팝송에 열광하고 있다. 이들은 “이상하게 힐링이 된다” “이게 원곡이고, 저스틴 비버가 커버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이 영상이 해외 이용자에까지 퍼지자 말한다. “부끄러운데, 자랑스럽다.”

국내 가수들도 배용길과 정광용의 커버곡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적재는 “기타 쳐서 mr(반주)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고, 박재범은 “와 충격이다, 웃긴 것보다 왜 마음이 안정이 되지”라고 했다. 전효성도 “못참고 다시 들으러 왔다”는 댓글을 달았고, 비와이는 “최고다 진짜”라고 했다.

보통 팝 음악 커버곡이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끌려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원어민 못지 않은 좋은 발음, 원곡자를 뛰어넘는 가창력, 원곡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배용길과 정광용의 커버곡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빗나갔는데도 대성공을 거뒀다. 오히려 정반대로 최악의 발음, 가창력을 언급하기도 민망한 노래 실력, 창의적이라곤 할 수 없는 노래방식 반주가 배용길·정광용 커버곡의 특징이다.
대신 이 듀엣은 어디서 한 번쯤 본 듯한 아저씨스러운 제스처와 무대 매너, 듣기 편한 가창 방식, 특유의 콩글리쉬로 새로운 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MZ세대를 저격하고 있다. 배용길은 엄지척을 한 채 팔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 한다. 정광용은 구부정하게 가만히 서서 천천히 손을 흔들며 노래한다. 딱 아저씨 같은 바로 그 자세다.

“I got my peaches out in Georgia.” 라는 가사는 한국식 발음 그대로 “아이 갓 마이 피치스 아웃 인 조쟈”로 부르고, “There‘s nothing like your touch”는 “대얼스 낫띵 라이크 유어 타치”로 부르는 식이다. “That’s that shit”이나 “Bad ass shit” 등 욕설이 들어간 대사는 “대대시” “배대시”로 순화해 부른다. 이 익숙함과 편안함 덕에 이 노래를 들은 많은 MZ세대는 “마치 ASMR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무한 반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디테일하게 구축된 캐릭터가 더 큰 재미를 만들어냈다고 보기도 한다. 피식대학 채널의 ‘한사랑산악회’는 1년 넘게 이어져 오며 김영남·이택조·배용길·정광용 주인공 4명의 아저씨 캐릭터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상태다. 배용길은 콩글리쉬 발음으로 말할 때마다 영어를 섞어 쓰는 아저씨, 정광용은 굼뜨게 움직이고 말 없이 항상 조용한 아저씨다.

이 두 캐릭터가 최신 유행 팝 음악을 부르자 마치 내가 알던 아저씨가 팝을 부른 것 같은 폭발적인 반응이 나온 것이다. 네티즌은 배용길과 정광용을 연기하는 코미디언 이용주와 정재형을 언급하는 대신 ‘용길 아저씨’ ‘광용 아저씨’라고 부른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에선 익숙하면서 차별화된 콘텐츠가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며 “젊은 세대 중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를 차별화시켜 부르니까 묘한 매력이 생겨난 경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하면서도 로컬한 콘텐츠가 대세인데, 이들의 커버곡이 딱 그런 사례”라고 말했다.
이들의 커버곡엔 다른 커버곡에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한국어 가사다. 이 역시 두 사람의 커버곡에 인기를 더해주고 있다.

배용길과 정광용의 ‘피치스’에는 “그대를 위한 천도복숭아, 그대와 떠난 통영 바다, 그대와 마신 보성 녹차, 그대와 닮은 후레지아”라는 가사가 들어있고, 이들 ‘피치스’ 이후에 내놓은 방탄소년단의 ‘버터’(Butter) 커버곡엔 “어디든 갈 수 있소, 내 손을 잡아보오 그대, 그대 고운 목소리 일렁이는 내 맘이 어디든 갈 수 있소”라는 가사가 담겨 있다. 네티즌들은 “촌스럽고 아재스러운 감성이지만, 원곡에서 느낄 수 없는 뭉클함이 있다”고 말한다.

‘피치스’ 후속으로 나온 ‘버터’는 공개된지 일주일 만에 조회수 200만회를 넘겼고, 세 번째 커버곡인 실크 소닉(Slik Sonic)의 ‘리브 더 도어 오픈’(Leave the door open)은 나흘 만에 조회수 90만회를 기록 중이다. 실크 소닉은 미국의 R&B 슈퍼 스타인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이 결성한 그룹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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