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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700년 전 보카치오처럼… 팬데믹 시대 우리의 삶을 엮다

입력 2021-07-03 03:00업데이트 2021-07-0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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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마거릿 애트우드 외 28인 지음·정해영 옮김/364쪽·1만6500원·인플루엔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묘사된 1348년의 피렌체 흑사병 당시 모습. 그림은 후대에 루이지 사바텔리가 에칭으로 표현한 것이다. 웰컴콜렉션 제공

지난해 3월 미국에서는 갑자기 14세기에 쓰인 한 책이 서점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문호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이었다. 14세기 유럽에는 인류사상 최악의 전염병인 흑사병이 돌았다. 보카치오는 흑사병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펴냈고, 공포에 떨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쳤다.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읽었고,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모여 이 책은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7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고전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단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한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케이틀린 로퍼 책임 프로듀서에 따르면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소설가 리브카 갈첸이 NYT에 연락해 데카메론 리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에 NYT는 한발 더 나아가 당대 최고 소설가들이 격리 중에 쓴 신작 단편소설들을 모아 ‘우리 시대의 데카메론’을 만들고자 했다. 로퍼는 서문에서 “암울한 시기에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제공하는 것보다 더 큰 야망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단편 29편이 모였다. 책은 지난해 7월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단편들을 다시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소설가들은 전염병 시대를 배경으로 사랑, 욕망, 행복 등을 다룬 일상 혹은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 그린다. 책의 시작인 ‘알아보다’는 봉쇄조치가 내려진 미국 뉴욕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두 여인의 우정을 다뤘다. ‘블랙 톰의 발라드’(2016년)로 미국 문학상인 셜리 잭슨상을 받은 소설가 빅터 라발의 작품이다. 작가는 마스크 착용, 원격 수업 등 코로나19 시대상을 작품에 녹여냈다.

‘눈 먼 암살자’, ‘증언’, ‘시녀 이야기’ 등을 쓴 유명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격리 중인 지구인들을 도와주러 온 문어 모습의 외계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그린다. 작품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속 외계인은 결혼을 통해 궁전에 들어가게 된 신분 낮은 그리젤다가 못된 궁전 사람들을 물리치고 사는 이야기를 전한다. 외계인은 만담꾼 역할에 대해 “재밌는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지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내용이다. 700년 전 책 데카메론도 그랬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이탈리아 도심 밖에 모인 젊은 남녀 10명이 10일 동안 각각 하루에 하나씩 총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을 액자소설 형태로 모은 책이다. 수녀가 실수로 두건 대신 내연남의 바지를 뒤집어쓰는 내용처럼 대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전염병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데카메론은 인간의 일상과 내면을 구체적인 체험으로 풀어내며 서로의 결속을 돕는다.

데카메론 프로젝트 역시 소설 속 불안정한 주인공의 일상에 공감해 씁쓸해하다가도 발랄한 문체에 웃음 짓게 된다. NYT 메일함이 이 소설이 준 위안에 대해 쓴 독자들의 편지들로 가득 찬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소설을 읽는 건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상황을 끈기 있게 버텨내는 방법이다. 책은 동시대 독자들이 누구도 상상해본 적 없는 현재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데, 또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긴 미래의 독자들이 이 시기를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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