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혁신적이고 평등한 ‘꿈의 직장’ 실리콘밸리는 없다

김재희 기자 입력 2021-06-19 03:00수정 2021-06-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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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 밸리/애나 위너 지음·송예슬 옮김/404쪽·1만8500원·카라칼
‘언캐니 밸리’는 돈과 권력을 거머쥔다고 여겨졌던 테크 업계에 2013년부터 몸담은 애나 위너가 빅데이터 회사와 오픈소스 기업에서 일하며 실리콘밸리를 들여다본 기록이다. 자율과 평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운 스타트업들의 이면에 자리 잡은 성공 만능주의, 성차별 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초 구글 본사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조 이름은 모기업 이름을 딴 ‘알파벳 노동조합’. 소수자 차별, 성차별, 사내 성폭력을 겪은 직원들이 1년간 노조 결성을 비밀리에 준비했다. 알파벳 노조는 “우리는 공정한 노동조건을 만들고 괴롭힘이나 편견, 차별, 보복이 없는 일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높은 처우와 수평적 조직문화로 ‘꿈의 직장’으로 불린 국내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따돌림과 차별대우 문제가 불거졌다.

이 책은 대중이 뉴스를 통해 피상적으로 접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이면에 숨겨진 실상을 고발한다. 저자는 사용자 행동분석 플랫폼 믹스패널과 오픈소스 서비스 깃허브에서 일하며 겪은 성차별과 더불어 직원들을 수익 창출의 도구로 여기는 비인간성을 낱낱이 기록했다. 예컨대 저자의 첫 회사였던 믹스패널의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당신은 목적을 받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다. 여기서 목적은 회사 수익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회사를 받드는 삶을 위해 ‘일은 엉덩이가 하는 것’이라는 규칙을 철저히 따랐다. 이런 현실에 지쳐 이직한 실리콘밸리 기업 깃허브도 다르지 않았다. 직원들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고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받지 않은 향정신제를 복용한다. 저자는 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지만, 곧 온라인에서 같은 약을 주문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단순히 실리콘밸리 직원들의 고충을 털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과 만능주의에 빠져 윤리성을 상실하는 과정도 가감 없이 서술한다. ‘갓 모드’ 관행이 대표적이다. 갓 모드란 마치 신처럼 업무를 위해 수집된 온갖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걸 말한다. 저자는 광고 솔루션을 제공한 첫 직장의 사례를 든다. 고객사가 광고효과가 좋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할 경우 고객사의 거래 내역뿐 아니라 회원정보까지 통째로 볼 수 있었다는 것. 고객사의 데이터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저자는 내밀한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직원이 존재한다는 걸 안 뒤로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어떤 애플리케이션(앱)도 내려받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서비스의 최우선 목표가 효율성에 맞춰진 테크 산업에 종사한 후 역설적으로 비효율성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속도와 변화만 좇던 그가 오랜 시간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거나, 일본식 주먹밥인 오니기리를 사러 멀리 저팬타운까지 걷는 등의 일상이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 첨단 산업의 이면에 도사린 비인간성의 실태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논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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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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