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의 아이콘 윤여정, 74세에 월드스타 오르다

김재희 기자 입력 2021-03-02 03:00수정 2021-03-0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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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골든글로브 수상]‘기생충’ 이어 2년연속 외국어영화상
美이민 한인가정 통해 가족애 그려
골든글로브 품은 '미나리'… 아카데미도 보인다


‘미나리’에서 외할머니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왼쪽)이 손녀 앤(노엘 조·가운데)과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에게 화투 치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손녀의 음료수를 뺏어 마시는 익살스러운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에 대해 외신은 ‘비전통적인 할머니’ ‘신스틸러’라고 호평했다. 판씨네마 제공
인종차별과 이민자 혐오가 늘어나는 시대. 낯선 미국 땅에 뿌리내리는 한국인 이민자의 모습을 통해 보편적 가족애를 담아낸 영화 ‘미나리’(사진)가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를 품에 안았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43) 감독의 미나리가 1일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어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미나리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 영화제 공개 이후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비전형적인 할머니(unorthodox grandma)’를 창조해낸 윤여정은 미국 주요 비평가협회상 등 지금까지 26개의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기생충으로 봉 감독이 누린 ‘봉하이브’ 열풍에 이어 ‘윤하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미나리가 골든글로브를 수상하면서 4월 25일 열리는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도 높아졌다. 미나리는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조연상(윤여정),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주연상(한예리)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미나리는 3일 국내에 개봉한다.
윤여정(오른쪽)의 영화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작품 ‘화녀’. 동아일보DB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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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에서 꼬마 데이비드(앨런 김)는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이불에 오줌을 싼 자신을 토닥여 주기는커녕 ‘페니스 브로큰’이라 놀리는 외할머니 ‘순자’(윤여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녀 앤(노엘 조)의 음료수를 뺏어 먹고, 손주들에게 화투 치는 법을 가르치며 “지랄”을 내뱉는다.

손주를 놀려먹는 짓궂은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74)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순자’는 영리한 신스틸러다. 그녀는 강인하지만 친절하고, 긴 인생을 살며 축적한 현명함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unorthodox grandma(비전형적인 할머니)’라고 정의했다. 미나리로 26개의 여우조연상을 받고,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점쳐지는 윤여정은 영화 안팎에서 최고의 셀럽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6년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할머니 역할을 맡은 윤여정. CGV아트하우스 제공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데뷔 이후 55년 동안 고정관념을 깨뜨려 온 윤여정의 파격이 힘을 발휘했다. 영화 데뷔작 ‘화녀’(1971년)에서부터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하녀 역을 맡아 맨손으로 쥐를 때려잡았던 그는 초등학교 동창과 눈이 맞는 시어머니(‘바람난 가족’·2003년), 재벌집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나이 든 하녀 ‘병식’(‘하녀’·2010년), 돈으로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재벌가 안주인 ‘백금옥’(‘돈의 맛’·2012년), 박카스를 건네며 노인들을 유혹해 성매매를 하는 할머니 ‘윤소영’(‘죽여주는 여자’·2016년)까지 평범한 인물을 거부했다.

윤여정은 미나리에서도 적극적으로 순자라는 인물을 구축했다. 밤을 깨물어 뱉은 뒤 손자에게 건네는 장면도, 손자와 함께 미나리가 심어진 곳을 찾아간 장면에서 “원더풀 미나리!”라고 외치는 대사도 그가 낸 아이디어다.

재치 있는 언변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유쾌함도 윤여정의 인기에 한몫한다. 13년간 미국에 살아 ‘실전 영어’에 능한 그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 영화제 시상식에서 영어로 “‘미나리’는 독립영화라서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주 많이 고생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느라 우린 한집에 살았고 그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했다.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가 터졌고, 이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에는 “정말 끝내주게 멋있다(bad-ass)” “그의 직설적인 화법을 사랑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스스로를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현재 방영 중인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위트 넘치는 영어로 외국인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응대하는 모습은 젊은층까지 사로잡고 있다.

2018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모든 걸 잃고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치매 노인 '순자'를 연기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윤여정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과거 영화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장 반응이 뜨거운 작품은 윤여정에게 청룡영화상 및 스페인 시제스(Sitges)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고 김기영 감독의 화녀. 프랑스 일본 대만 태국 등에서 개봉 러브콜을 받고 있다. 화녀 제작자로, 국내외 재개봉을 추진하고 있는 정진우 감독은 “시제스 영화제를 방문한 1971년만 해도 ‘한국은 독재국가라서 영화가 정권의 선전 수단으로 쓰인다’는 편견 때문에 수상하기 힘들었다. 신인 윤여정이 연기력 하나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윤여정은 늘 겁 없고, 정통적이지 않은 여성상을 연기해 왔다”며 “순박한 시골 처녀가 팜파탈로 변신하는 화녀로 여우주연상을 휩쓴 뒤 전통을 뒤흔드는 역할을 맡아 왔다”고 평가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미나리#윤여정#파격의 아이콘#월드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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