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없는 놈이 싸가지까지 없다[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1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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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설마’란 낱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한 달여 전, 벤츠를 타고 온 중년의 모녀가 노숙인을 위한 무료 도시락을 받아갔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터무니없는 욕심과 몰염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배우 윤문식의 단골 대사가 절로 떠올랐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싸가지.’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린잎이나 줄기를 가리키는 ‘싹’에 ‘-아지’가 붙은 말이다. 코로나 세상이 너무 힘들어선지 요즘 들어 부쩍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싸가지가 있는’ 일이 많으면 좋으련만, 거꾸로 ‘싸가지 없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한데 이 ‘싸가지’라는 말, 표준어가 아니다. 많은 이가 즐겨 쓰는 입말로 자리 잡았는데도 ‘싹수’의 강원, 전남 사투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말엔 싹수의 사투리가 제법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전남 지방의 ‘느자구’나 충청 지방에서 쓰는 ‘느저지’, 경북 문경과 상주 지방의 ‘양통머리’가 그렇다. 이 중 느자구는 요즘 들어 ‘누가 뭐래도’ 등 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다. “아따, 느자구없는 가시나.” 극 중 한억심 할머니의 찰진 대사다. 사전대로라면 “싹수없는 가시나”란 소린데, 사람들은 그보단 ‘싸가지 없다’는 뜻으로 대부분 받아들인다. 재미있는 건, 할머니가 내뱉는 느자구없다엔 ‘내 사랑 싸가지’ 같은 애정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느자구, 느저지, 양통머리는 지역어에 머물러 있지만 ‘싸가지’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즐겨 쓰는 편이다. 그런데도 싸잡아 사투리 취급을 해야 할까. 또 하나. ‘느자구없다’를 ‘싹수없다’보다는 ‘싸가지 없다’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싹수와 싸가지의 쓰임새를 달리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한다. ‘싹수가 있다(없다), 싹수가 노랗다’처럼 쓴다. 이 가운데 ‘없다’와 결합한 싹수는 주격조사 ‘-가’가 탈락해 ‘싹수없다’로 굳어졌는데, ‘장래성이 없다’는 뜻이다.

싸가지와 싹수는 ‘싹’에서 나온 말이고, 두 말 모두 긍정적 부정적으로도 쓸 수 있다. 그걸 보면 싸가지는 처음엔 싹수와 뜻이 같았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떨까. ‘싹수가 노랗다’란 말 대신에 ‘싸가지가 노랗다’라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두 말의 의미와 쓰임새는 분명히 다르다. 싸가지는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나타내는 말로 진화한 셈이다.

자, 그러면 ‘싹수없는 놈이 싸가지까지 없다’라는 말은 성립할까. 벤츠 모녀 사례에서 보듯 충분히 성립한다. 그렇다면 싹수와 싸가지는 각기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싸가지’를 ‘싹수의 사투리’가 아닌, 별도 표준어로 삼아야 한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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