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이제 와서 진학 못한다고?” 경기고 선배들의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4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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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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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 영동대로에 있는 경기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명문이었습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라는 이름이던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지요. 대한제국 정부가 직접 세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데다 가장 먼저 개교한 관립 고등교육기관이라 전국에서 수재들이 몰려든 덕이었죠. 학생들의 자존감도 대단했습니다.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해 수십 명이 사법처리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엔 “일본인이 다니는 중학교와 달리 우리는 왜 실과위주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며 동맹휴학을 결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성제일고보 학생들이 3년여 만에 다시 동맹퇴학 카드를 꺼내들어 조선총독부가 바짝 긴장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건 1922년 말 겨울방학 날이었습니다. 다가오는 학년시험과 상급학교 진학시험에 관한 어느 학생의 질문에 교장이 “본국과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아 이번 졸업생은 일본 상급학교에 입학하기 어렵다”고 한 겁니다. 국내에는 더 이상 배울 곳이 없던 당시 일본의 고등학교나 대학 예과에서 학업을 이어가려던 학생들에겐 날벼락 같은 얘기였습니다.
신 조선교육령의 주요 내용
제1조: 조선에서의 교육은 이 칙령에 의함.

제2조: 국어를 상용하는 자의 보통교육은 소학교령, 중학교령 및 고등여학교령에 의함.

제3조: 국어를 상용치 않는 자에 보통교육을 하는 학교는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및 여자고등보통학교로 함.

제4조: 보통학교는 … 국민 될 성격을 함양하고 국어를 습득케 함을 목적으로 함.

제5조: 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은 6년으로 함. 단, 지역사정에 따라 5년 또는 4년으로 정함.

제6조: 고등보통학교는 … 국민 될 성격을 양성해 국어에 숙달케 함을 목적으로 함.

제7조: 고등보통학교 수업연한은 5년으로 함.

제8조: 여자고등보통학교는 … 국민 될 성격을 양성하고 국어에 숙달케 함을 목적으로 함.

제9조: 여자고등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은 5년 또는 4년으로 함. 단, 지역사정에 따라 3년으로 함.

제10조: … 고등보통학교 졸업자는 중학교 졸업자, 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자는 상당 수업연한의 고등여학교 졸업자로 간주함.
제23조: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및 사범학교의 교과, 편제, 설비, 수업료 등에 관해서는 조선총독이 정하는 바에 의함.

제24조: 공립 또는 사립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및 여자고등보통학교와 공립 사범학교의 설립 및 폐지는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함.

제25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조선총독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어를 상용하는 자는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또는 여자고등보통학교에, 국어를 상용치 않는 자는 소학교, 중학교 또는 고등여학교에 입학할 수 있음.

그도 그럴 것이 총독부 고위 관료들은 그 해 2월 신 조선교육령을 공포하면서 고보를 졸업하면 일본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공언했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미즈노 정무총감은 “양자(조선인과 일본인) 학교의 명칭은 다르지만 수업연한, 학과, 과정, 상급학교 입학자격 등은 모두 같다”고 했고, 시바타 학무국장도 “(여자)고보 수료자 또는 졸업자가 조선은 물론 일본 상급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주기 위해 본국 문부성과 교섭 중”이라고 했었죠.

분개한 4, 5학년 학생 80명은 1923년 1월 13일 ‘우릴 속인 학교당국을 이해할 수 없다. 1주일 안으로 완전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동맹 퇴학하겠다’는 문서를 모두 서명합니다. 동아일보는 19일자 3면 ‘상급학교 입학자격 문제로 제일고보 고학년의 대 동요’ 등 기사에서 학생, 교장, 총독부 학무국장의 주장을 충실히 전달했습니다. 이어 21일자 3면에 ‘신 교육령은 휴지인가’라는 기사를 실어 경성제일고보 외에 다른 고보 고학년들도 험악한 기세로 집단행동을 할 움직임이라며 식언(食言)을 한 총독부를 압박했습니다. 총독부가 부랴부랴 문부성과 협의해 결국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됐습니다.

일제의 조선교육령 개정을 앞두고 조선교육개선회 등 우리 교육단체들은 학교시설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먹히지 않아 일제강점기 내내 심각한 입학난을 연출했다. 사진은 1935년 새학기를 앞두고 경성사범 교정에 쇄도한 학생과 학부형들.
일제의 조선교육령 개정을 앞두고 조선교육개선회 등 우리 교육단체들은 학교시설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먹히지 않아 일제강점기 내내 심각한 입학난을 연출했다. 사진은 1935년 새학기를 앞두고 경성사범 교정에 쇄도한 학생과 학부형들.


조선교육령은 국권 피탈 이듬해인 1911년 8월 처음 나왔습니다. 조선 내 일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고, ‘충량(忠良)한 제국신민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교육칙어가 포함됐습니다. 조선인 학제를 보통학교 3~4년, 고보 4년(여자고보는 3년)으로 해 소학교 6년, 중학교 5년의 교육을 받는 일본인과 노골적으로 차별했습니다. 3·1운동 후 교육정책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사이토 총독부는 이른바 ‘일선(日鮮) 공학’을 실현한다며 교육령 개정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물이 1922년 2월 공포한 신 조선교육령인데 역시 ‘공학의 탈을 쓴 차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임시교육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이들이 모은 의견을 토대로 조선교육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미즈노 정무총감이
 위원장을 맡은 이 위원회는 23명의 위원 중 조선인은 친일파인 이완용(왼쪽), 석진형, 고원훈(오른쪽) 셋뿐이라 조선민중의 뜻을
 반영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임시교육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이들이 모은 의견을 토대로 조선교육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미즈노 정무총감이 위원장을 맡은 이 위원회는 23명의 위원 중 조선인은 친일파인 이완용(왼쪽), 석진형, 고원훈(오른쪽) 셋뿐이라 조선민중의 뜻을 반영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조선 내 일본인들에게도 적용하고, 교육칙어를 삭제하고, 조선인 학교와 일본인 학교의 수업연한을 같게 해 차별을 없앤 것처럼 꾸몄지만 실상은 딴판이었습니다. ‘국어(일본어)를 상용하는’ 일본인은 소학교-중학교-고등여학교, ‘국어를 상용치 않는’ 조선인은 보통학교-(여자)고보로 분리했을 뿐 아니라 사정에 따라 보통학교와 여자고보는 1, 2년을 단축할 수 있게 한 것이 대표적이었죠. 총독부는 수업연한 단축의 이유를 “부족한 학교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라고 했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입학난은 심각한 사회문제였습니다.

동아일보는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신 조선교육령이 규정한 각 학교의 목적에 ‘국민 될 성격을 양성하고 국어를 습득(숙달)하게 함’이 포함된 점을 공격했습니다. 1922년 2월 9, 10일자 연속사설은 “이는 순수한 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제국주의 이상을 감춘 정치적 목적”이라며 “교육기관이 동화기관이냐”라고 따졌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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