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히틀러와 나치스에게 양심을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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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란 무엇인가/마틴 반 크레벨드 지음·김희상 옮김/464쪽·2만5000원·니케북스

스토아학파의 대표 철학자이자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년 재위)의 기마상. 그는 행위의 결과보다 ‘평정심, 공평함, 명성을 무시하기’ 같은 개인의 행위 양식을 양심의 기초에 두었다. 동아일보DB
스토아학파의 대표 철학자이자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년 재위)의 기마상. 그는 행위의 결과보다 ‘평정심, 공평함, 명성을 무시하기’ 같은 개인의 행위 양식을 양심의 기초에 두었다. 동아일보DB
정의가 무엇인지에 그토록 높은 관심이 쏠렸으니, 각 개인에게 정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양심’에 관심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저자는 고백한다. ‘양심의 명확히 다듬어진 정의를 내리고 양심의 기원 및 본성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 책은 실패작이다’라고.

책의 원제인 ‘Conscience: a Biography’(2015년)는 ‘양심전(傳)’에 가깝다. 유사 이래 인류가 양심을 어떻게 이해해왔으며 그 내용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구약성경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책임감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있었고 ‘신장(腎臟)이 찔린다’는 표현으로 회한을 의미했지만 양심 개념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선(善)을 뜻하는 ‘아가토스’는 지배계급이 하층민과 차별화하기 위한 덕성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뜻의 ‘아이도스’도 이익을 위해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로마 제국은 영어 양심(conscience)의 어원인 라틴어 ‘conscientia’를 낳았다. ‘완전히(자기를) 아는 것’이라는 뜻처럼 행위의 결과보다 마음을 가진 주체의 균형과 자율성이 중요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양심은 사도 바울에서 출발했다. 그는 스토아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양심에 해당하는 ‘시네이데시스’에서 이성과 관련된 부분을 끊고, 신앙의 기초로 기존의 율법 대신 양심을 끌어들였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양심을 ‘내 성서 해석의 보증’으로 내세웠다. 개신교도라면 양심을 길잡이 삼아 자기 자신의 양심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양심의 가면을 찢어버렸다. 양심은 공공선을 위해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이렇게 촉발된 양심의 가치 논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는 양심에서 신(神)을 떼어놓았고 헤겔은 신 대신 국가를 양심의 근거로 내세웠다. 칸트는 양심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았지만 그가 행동의 원칙으로 내세운 ‘보편법칙’은 양심과 의무를 연관시켜 프로이센의 관료제에 잘 들어맞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충분히 공정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돌프 히틀러의 말이었다. 유대인 대량 말살이라는 반인류적 범죄가 독일인들에 의해 일어난 책임에서 헤겔과 칸트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양심에 대한 연구는 신경과학자들의 논의로 대치되는 듯이 보인다. 스키너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양심을 ‘사회적, 복합적 억압’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규범과 억제는 양심의 지극히 작은 부분밖에 포괄하지 못한다. 따라서 양심의 실체에 대한 추적은 끝나지 않았으며, 그 중요성 또한 줄어들지 않는다. 신과 국가가 사라진 자리를 이제 환경 같은 새로운 개념이 대치하고 있다.

히브리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양심이 있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3제국을 훨씬 넘어선 광대한 지적 탐험이 결과물로 남았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민족이나 종교에 대해 필요 이상의 가치 부여를 하지 않는 점도 매력이다.

책의 전모를 파악하느라 끙끙거린 뒤에는 말미에 전체 내용을 친절하게 요약한 ‘맺는 말’이 기다린다. 이 부분부터 읽는 것도 좋은 전략일 듯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양심이란 무엇인가#마틴 반 크레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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