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영화제에 ‘레드카펫’이 깔리는 까닭

김민 기자 입력 2020-09-12 03:00수정 2020-09-12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빨강의 역사/미셸 파스투로 지음·고선일 옮김/368쪽·1만8000원·미술문화
프랑스의 최고 권위 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리본걸이, 리본, 자수 등 거의 모든 것이 빨갛다.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붉은 고기가 흰색 고기보다 더 기운을 북돋운다는 믿음도 있다. 빨간색 스포츠카는 왠지 더 빨리 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니멀’과 무채색이 일반적인 21세기엔 자칫하다 촌스러워질 수 있다.

이 책은 대담하며 권위적인 색, 빨강의 역사를 다룬다. 고대 로마부터 18세기까지 서유럽에서 빨강은 그 어느 색보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었다. 중세 문장학의 권위자인 저자가 ‘파랑의 역사’(2000년)와 ‘검정의 역사’, ‘초록의 역사’를 내고서야 ‘빨강’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빨강은 인간이 처음으로 제어하고 만들었던 색이다. 제작 시기가 기원전 1만5000∼기원전 1만3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들소도 붉은색으로 채색됐다. 고전 라틴어에서 ‘빨강’은 ‘채색된, 유색의’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어떤 언어에서는 색을 나타내는 용어로 하양, 검정, 빨강 세 가지만 존재할 정도다. 이렇게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가장 원초적이며 우월했던 빨강은 중세 말 그 위상이 급속도로 흔들렸다. 귀족적인 색으로 급부상한 파랑, 사치와 우아함을 표상한 검정의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교개혁 이후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인 색으로 낙인찍힌 빨강은 16세기 말부터 퇴조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그럼에도 빨강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때 여전히 사용되곤 한다. 세일이나 행사 상품을 알릴 때 붉은 글씨를 쓰며, ‘레드 라벨’은 일반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의미한다. 빨간 립스틱은 도발적인 유혹을 상징한다. 중요한 인물을 맞이할 때 ‘레드 카펫’이 깔리는 것도 변하지 않는 관습이다.

주요기사
단순한 색채의 개념 규정이나 상징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분석했다. 이 덕분에 색채를 렌즈로 사실상 역사를 돌아보는 기분이 든다. 다만 그 역사가 전 세계가 아닌 유럽에 한정된 것은 유념해야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빨강의 역사#미셸 파스투로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