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수사 잘하려면 잘 들어야죠”

손효림 기자 입력 2020-09-12 03:00수정 2020-09-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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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대화법’ 펴낸 양중진 강릉지청장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선배님 방은 한의원 같아요. 한의사가 환자들에게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라고 묻는 것처럼 조사받는 이들을 대하시더라고요.”

양중진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장(52·사진)이 후배 검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양 지청장은 말한다. “수사를 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질문은 잘 듣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그가 오감으로 소통한 경험을 담은 ‘검사의 대화법’(미래의 창·1만4800원)을 출간했다. ‘검사의 삼국지’ ‘검사의 스포츠’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6일 그를 만났다.

“말이 없는 편인데 그걸 포장하다 보니 잘 듣는다고 한 거예요.(웃음) 초임 때는 언성을 높이며 추궁했는데, 3학년(세 번째 임지에서 근무하는 검사) 정도 되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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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짜증이 치솟기도 하지만 일단 참고 귀를 기울인 뒤 질문을 구체적으로 했다. 사기죄 피의자에게는 ‘약속대로 이자나 원금을 모두 갚았는지’ ‘○월 ○일까지 돈을 갚기 위한 실현 가능한 계획이 있었는지’를 묻는 식이다.

그는 듣기 내공(?)으로 상습 고소인으로 유명한 할아버지의 사건도 해결했다.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쉬지 않고 욕을 섞어 말을 쏟아내는 할아버지를 보다가 속기사에게 그대로 받아치게 한 것. 10주에 걸쳐 무려 500쪽이 넘는 분량의 고소장이 작성됐고 결국 피고소인은 위증죄 판결을 받았다.

“다른 상습 고소인과 달리 그분의 말을 들어 보니 허무맹랑하지 않고 팩트가 있더라고요. 불기소 처분을 내렸으면 고소장에 제 이름도 추가될 것 같았고요.”(웃음)

생활인으로서 검사의 모습도 비춘다. 검사들끼리 승부차기가 평등의 원칙에 맞는지 논쟁하던 중 한 선배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바조도 2006년 월드컵 결승 승부차기에서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공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한 후배가 “2006년이 아니라 1994년이었죠”라고 지적하자 돌아온 선배의 반응. “역시 이 검사는 내 말을 완벽하게 완성해 주는군!” 재치 있게 후배의 체면을 살려주고 스스로도 무안해지지 않게 만든 선배의 말에 가슴속에서 진심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접촉 사고를 낸 아내의 호소에 판사, 검사, 변호사 남편이 각각 다르게 대꾸하는 이야기, 점심을 먹으러 갈 때 판사들은 2열 종대형으로, 검사들은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학익진 대형(학이 날개를 편 듯 둘러싸는 진법)으로, 변호사들은 자유분방형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소개하는 등 깨알 재미도 선사한다.

시선과 침묵, 헛기침, 손의 움직임 등 말로 하지 않는 것에도 의미가 담겨 있음을 찬찬히 일러준다. 그는 검사 후배,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책에 담았다고 했다.

“메신저가 활성화되면서 직접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됩니다. 식사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밥 먹으며 선배에게 물어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얻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가 책 속지에 사인과 함께 글귀를 써서 건넸다. ‘겸손, 배려, 경청, 손효림 님의 향기입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검사의 대화법#양중진 강릉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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