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北출신 포로가 모두 ‘반공’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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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학술회의 개최

1950년 12월 AP통신 맥스 데스퍼 기자가 대동강 다리 잔해를 기어올라 강을 건너는 피란민을 촬영한 사진. 동아일보DB
1950년 12월 AP통신 맥스 데스퍼 기자가 대동강 다리 잔해를 기어올라 강을 건너는 피란민을 촬영한 사진. 동아일보DB
“6·25전쟁에 대한 반공주의적 연구는 전쟁을 냉전 대결 구도에서만 인식하면서 전쟁 이면의 복합성을 간과한 한계가 있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57)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17일 열리는 학술회의 ‘6·25전쟁 한강선 전투와 전쟁 70주년 성찰’의 발표 자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와 한국전쟁학회(이상 회장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장)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공동 개최한다.

김 교수는 ‘6·25전쟁사 70년의 역사정치학: 승전을 위한 선전을 넘어서’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던 북한군 출신 전쟁포로라는 뜻으로 쓰이는 ‘반공 포로’보다 ‘송환 불원 포로’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했다. 반공 사상보다는 단순히 고향이 남쪽이어서 북쪽으로의 송환을 원하지 않은 포로도 있었다는 것.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들은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를 거부한 ‘제3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했다는 생각 역시 소설 ‘광장’ 등의 영향으로 생긴 통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나중에 미국 등 에 밀입국할 것을 염두에 두고 중립국을 선택했다는 증언이 있는 것을 볼 때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1950년 12월 4일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남하하는 피란민을 촬영해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 ‘Flight of Refugees Across Wrecked Bridge in Korea’ 역시 남쪽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고 봤다. 김 교수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사진은 선전용으로 활용됐지만 피란민 가운데는 원폭 투하와 폭격에 대한 공포로 안전한 곳을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북한 측은 이 같은 주장의 연장선에서 ‘한국군은 미군의 괴뢰일 뿐’이라고 선전하면서 군사정전위에서 우리 군 소장이 유엔군사령부 수석대표를 맡자 위원회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전협정 서명은 원래 국가 정상이 아니라 군 사령관이 하는 것이고,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국군과 다른 참전국 군 사령관을 대표해서 서명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6·25전쟁 연구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후기수정주의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것이 미국학계의 냉전사 연구를 분류할 때 적합한 방법이라고 보면서 공산주의, 반공주의, 반(反)반공주의로 나눠 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반공주의적 6·25전쟁 연구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있었지만 도그마가 되면서 계승, 발전되지 못했고 공산주의적 시각이 주도권을 잡는 경향이 나타났다”면서 “반(反)반공주의 역시 공산주의적 선전은 비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승전과 체제 선전을 위해 가려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 6·25전쟁 당시 한강선방어작전, 김포반도전투, 제2차 서울 수복 전투의 의미를 재조명한 발표 등이 있을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6·25전쟁 70주년 학술회의#반공#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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