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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첫 마음, 첫 발자국]꾸러기 수비대

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입력 2020-03-02 03:00업데이트 2020-03-02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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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어린 시절 즐겨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꾸러기 수비대’라는 만화가 있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를 지키는 십이 간지(干支) 동물들 이야기였다. 열두 동물 중 나는 가장 똘똘하고 용기 있는 주인공 쥐 ‘똘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늘 마음이 쓰이는 건 돼지 ‘찡찡이’였다. 원더랜드를 무너뜨리려는 악당들에 맞서 똘기와 친구들은 몸에 차고 있는 크고 작은 구슬로 힘을 발휘해 싸웠다. 하지만 겁이 많고 툭하면 우는 찡찡이의 구슬은 불이 켜진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누군가에게서 도망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있는 힘껏 달려야만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등 뒤의 인기척을 끔찍해하며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면 나 자신의 무기력에, 나의 공포를 알아봐줄 귀 없는 적막에 시달렸다. 그런데 가끔은 꿈속의 내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어 소리를 지르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내게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되물으며 꿈에 맞섰다. 그렇게 버티다 잠이 깨면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음 안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간다. 그 가운데 어떤 이야기는 고요히 간직되는 것만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에 색을 새겨 넣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자기 이야기에 목소리를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나 꿈속의 살인자에게 맞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들은 목소리를 가져보지 못해서, 내 언어를 들어주는 귀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혹은 자기를 드러내도 괜찮은 환경에서 숨쉬어본 일이 없어서 마음 안에 감금된 채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들에 원더랜드는 고통스럽고 외롭다.

나는 말이 되지 못하는 이야기, 말이 되기 전에 숨을 잃어버리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한다. 들리지 않지만 거기 있는 마음들이 목소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그 목소리들이 웅크리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나눠온 이야기보다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망쳐야 할 무엇이 아니라 마주 봐야 할 무엇으로 느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서글프다. 하지만 다짐 같은 이 서글픔이 나는 나쁘지 않다.

악당들의 공격이 무자비해지고 희망이 남지 않았을 때, 서럽게 우는 찡찡이의 구슬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광선이 뿜어져 나오던 것을 기억한다. 그 빛이 커지고 커져 텔레비전 화면이 온통 하얗게 빛났다. 이 작은 화면이 불 켜져 있는 동안 이야기의 세계를 지키는 일은 내게 아직 끝나지 않는다. 꿈과 희망의 이야기나라, 원더랜드에서는 오늘도 찡찡이가 운다.
 
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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