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0]희곡 ‘선인장 키우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쁨보다 부끄러움 안고 좀더 써볼것

● 당선소감


조지민 씨
조지민 씨
두 주인공에게 미안해하고 싶지 않아서 오래 이 작품을 붙잡아 두었습니다. 이제 독자와 관객분들께 떠나보내야 할 때가 왔는데도 처음 두 사람을 만났을 때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끝내 그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빛나는 순간들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일들은 종종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제가 특별히 부족하거나 불운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꼭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뻤던 이유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기뻐했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그들에게 조금 덜 미안해하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래 바라온 일인데 막상 당선이 되고 나니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그래도 이 부끄러움을 안고 좀 더 써 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함께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누었던 선생님들과 동료들 덕분입니다. 문학의 테두리 밖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이끌어주신 주찬옥 선생님, 이승하 선생님, 방현석 선생님, 정은경 선생님, 이대영 선생님, 전성태 선생님, 김근 선생님, 김민정 선생님 감사합니다. 희곡을 만나게 해준 노리터, 희곡을 놓지 않게 해준 희곡 소모임 동료들, 그리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만난 문학보다 소중한 사람들,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덜 다치도록 지켜주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 감사합니다. 당신들을 만난 게 제 가장 큰 행운입니다.

△1994년 부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보려는 새 ‘서정’▼

● 심사평


올해도 응모 편수가 많이 줄었다. 현장의 여러 희곡상에서도 수상작을 못 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해볼 일이다. 징후에도 암과 명이 있다. 올해 응모작의 관심 분야는 그리 넓지 않았고 단순히 연극적인 작품은 줄어든 반면 대동소이했다.

비관이 곧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은 어리다. 우리는 현재의 징후를 다시 ‘통찰’하기 위해 소재가 동반하는 어쩔 수 없는 선정성을 작가가 어떤 입장에서 컨트롤하고 있는지, 글쓰기의 어려움과 시대 읽기의 어려움을 분리해서 사고하고 있는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단지 인물을 빌려 말하지 않고 극 자체가 그것을 알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김철리 씨(오른쪽)와 장우재 씨.
김철리 씨(오른쪽)와 장우재 씨.
최종 후보작은 ‘무덤’ ‘빨갛게 익은’ ‘선인장 키우기’였다. ‘선인장 키우기’는 시험지 유출 사건에 용의자로 몰린 두 학생의 철없어 보이는 대화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은 삶의 ‘부당함’을 세계의 ‘불가해성’에 욱여넣으려 했다. ‘부당’과 ‘불가해’는 다른 것이지만 두 사람이 미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그러한 행위가 자연스럽게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서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 ‘서정’이고 젊다. 햇살이 한 줄기라도 들어오면 그걸 붙잡아야 하는 시기일지 모른다. 우리는 ‘선인장 키우기’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김철리 연출가·장우재 대진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동아일보#신춘문예#2020#희곡#선인장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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