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한 기질 가진 시인, 어떻게 이런 낯간지러운 찬사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1일 1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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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보니 구름이요, 얼굴 보니 꽃이로세/ 봄바람은 난간을 스치고 이슬은 더없이 영롱하네/ 군옥산 산마루에서나 볼 선녀가 아니라면/ 요대의 달빛 아래서나 만날 선녀임이 분명하네(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운상의상화상용, 춘풍불함노화농. 약비군옥산두견, 회향요대월하봉). -‘청평조(淸平調)’, (이백··李白·701·762)》

이백이 당 현종 앞에 불려와 지었다는 양귀비 찬가다. 오색영롱한 구름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의상, 농염한 모란에 비길 만한 어여쁜 열굴. ‘이 봄날 정자 난간에 기대어 꽃구경하는 귀비, 그대는 분명 군옥산이나 요대에 산다는 전설 속의 그 선녀일 테지요?’라 묻는 이백 특유의 도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다.

어느 늦은 봄, 모란이 만개했다는 소식에 황제는 양귀비를 대동하고 황궁의 침향정(沈香亭)으로 행차했다. 궁중 가무를 담당하는 이원제자(梨園弟子)들의 공연이 막 시작될 즈음, 황제가 당대의 명창 이구년(李龜年)에게 말했다. “오늘은 귀비와 함께 진귀한 꽃을 감상하는 자리이거늘 어찌 옛 가락만 들을 수 있겠는가?” 황제는 이백을 불러들이라고 했다. 이구년은 황급히 장안 곳곳을 누비다 마침 주점에 곯아떨어져 있는 이백을 찾아냈다. 원래 궁궐 안에서는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했지만 다급했던 이구년은 그를 말에 태운 채 침향정으로 직행했다. 거나하게 취한 채 황제 앞에 불려온 이백이 화들짝 놀라 깨자, 황제가 명했다. “마침 작약(모란)이 만개해 귀비와 함께 완상하러 나왔으니 시 한 수를 지어보라.”

취기가 오를수록 한결 더 시흥이 살아나는 이백이었으니 새삼스레 당황할 것도 없었다. 그가 모란과 귀비를 번갈아 보면서 즉흥적으로 읊어댄 가락이 청평조 3수, 그중 제1수가 바로 위의 시다. 호탕한 기질을 가진 시인이 어떻게 이런 낯간지러운 찬사를 쏟아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현종과 귀비 모두 이 시에 크게 흡족해 했다고 전해진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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