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와 멜로 사이… 어정쩡한데 이상하게 재미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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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화 ‘미옥’

영화 ‘미옥’에서 범죄조직의 중간 보스 나현정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영화를 ‘여성 누아르’로 부르기에는 망설여지지만 김혜수가 극중 전기톱을 휘두르거나 산탄총을 난사하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영화 ‘미옥’에서 범죄조직의 중간 보스 나현정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영화를 ‘여성 누아르’로 부르기에는 망설여지지만 김혜수가 극중 전기톱을 휘두르거나 산탄총을 난사하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이처럼 어딘가 어정쩡하면서 참 재밌기도 힘들다. 9일 개봉하는 ‘미옥’(감독 이안규)은 누아르의 외피를 띤 멜로다. 헌데 감정의 밀도를 축적해나가려 애쓰지 않는다. 제목은 여자 이름인데, 극은 남주인공 임상훈(이선균)이 끌고 나간다.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기업으로 키워낸 나현정(김혜수)이 은퇴를 준비한다. 무협지로 치면 금 대야에 손을 씻고 이후로는 강호를 완전히 떠나는 이른바 ‘금분세수(金盆洗手)’를 하고 싶은 것. 그러나 강호의 의리는 은원(恩怨)을 잊지 않는 게 기본이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조직의 행동대장 임상훈의 억눌린 욕망이 분출하고, 나현정에게 약점을 잡힌 검사 최대식(이희준)이 앙갚음을 시도하면서 이야기가 얽혀든다.

영화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에 등장하는 뒤틀린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관건은 멜로가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다. 영화는 감정을 섬세하게 쌓아 나가는 장면들의 비중을 축소하면서 속도감과 ‘쫄깃함’을 얻었다. 일단 공감하고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 어렵다. 그러나 처음에 공감이 안 되면 ‘왜 저렇게까지?’ 싶을 터다.

다수의 남자 관객은 별 상관없을 듯하다. ‘갖고 싶은 걸(예를 들어 ‘보스의 여자’라든가) 못 갖는’ 아이의 투정은 사실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이선균은 이런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이선균이 최근 10년간 출연한 영화 중 관객 200만 명이 넘게 든 영화를 보자.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 ‘화차’(2012년), ‘쩨쩨한 로맨스’(2010년). ‘끝까지 간다’(2013년)를 제외하면 모두 어딘가 주인공의 내면에 ‘찌질한’ 구석이 있다. 언뜻 그만큼 조폭 행동대장이 안 어울리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런 어정쩡함이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럽다. 이제 찡그린 이마 주름이 자연스러운 그의 ‘쿨’하지 못한 모습은 제 욕망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쉽게 파고든다.

김혜수 역시 최근 어둠의 세계에 있는 여자 역을 되풀이해 맡으면서 이미지를 관객에게 각인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볼거리로서도 영화는 ‘화끈한(?)’ 편이다. 수능 시즌에 걸쳐 개봉하면서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수험생 관객의 상당수를 포기한 이 영화는 ‘청불’ 영화가 허용하는 연출의 폭을 제대로 활용했다. 폭력은 넘쳐나고, 잔혹한 장면은 ‘굳이 필요했나?’ 싶은 선을 넘나든다. 시작부터 ‘살색(노출)’이 스크린에 가득하다.
★★★★(★ 5개 만점)
  
조폭 해결사 임상훈 역의 배우 이선균. 극중 설명이 미진한 인물관계의 공백을 배우의 이미지가 채워 넣는다.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조폭 해결사 임상훈 역의 배우 이선균. 극중 설명이 미진한 인물관계의 공백을 배우의 이미지가 채워 넣는다.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 “결핍이 있는 인물… 멋지지 않아 좋았죠”


임상훈 역 맡은 배우 이선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7일 배우 이선균을 인터뷰한 서울 종로구의 카페 인근은 교통 정체가 극심했다. 이선균은 카페 인근의 한 부동산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왔다고 했다. 약속에 늦은 탓인지 다소 정신이 없어 보였지만 솔직했다.

―출연에 얽힌 사연은….

“임상훈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멋진 캐릭터가 아니라, 결핍이 있고 비뚤어진 사랑을 한다. 또 누아르에서 총 쏘는 배역을 해 보고 싶었다. 주윤발(저우룬파·周潤發)을 좋아했던 세대니까.(웃음) 그런데 내 연기가 아쉬웠다.”

―상훈과 비슷한 다른 작품의 캐릭터를 연구했나.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가 떠올라 부담이 됐다. 회사원처럼 ‘젠틀’한 모습을 연기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양아치’처럼 할지 고민했는데 확신을 못 가지고 어정쩡하게 한 면이 있다. 사실 상훈을 더 지저분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일종의 외근직이니 옷에 흙도 막 묻히고. (그 대신) 멜로 쪽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영화를 본 소감은….


“원래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가 아닌데…. 주인공들 사이에 오랫동안 감춰뒀던 비밀과 응축됐던 공기가 폭발하는 게 더 잘 표현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영화 미옥#김혜수#이선균#누아르의 외피를 띤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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