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가 말을 걸다… 사라져가는 공동체로의 ‘사색 여행’

  •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展

14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공동체 아카이브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오래된 글과 사진 자료들을 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4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공동체 아카이브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오래된 글과 사진 자료들을 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이 12월 3일까지 여는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공동체 아카이브 전시’를 보고나서다. 우리 시대 미술의 역할 중 하나, 즉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전시 작가 21명, 연구자 아카이브 8명, 퍼포먼스와 워크숍 10단체. 꽤 어려운 현대 미술인가 보다 생각하며 14일 오프닝 때 전시장에 들어섰다.》
 

작가 9명의 온라인 글이 실시간으로 출력되는 작품.
작가 9명의 온라인 글이 실시간으로 출력되는 작품.
1층 입구에는 이응노(1904∼1989)의 ‘군무’와 민중미술가 오윤(1946∼1986)의 춤추는 사람들 그림이 있었다. ‘몸으로 기억되는 공동체’다. 한국 전통의 공동체 모델인 두레에 대한 기록들이 펼쳐지고, 민요학자 이소라가 채집한 우리 민요의 악보와 가락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전시는 공동체에 관한 아카이브(문서 기록) 전시였다.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의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리토르넬로(후렴구) 개념을 중심으로 공동체 아카이브를 공감각적으로 구현해 봤어요. 국가기록원과 박물관 등 권위와 권력이 ‘위로부터 만들어 내는 역사’가 아니라 민중과 소수자들이 내는 목소리와 기억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역사 쓰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리토르넬로는 17, 18세기 교향곡에서 주로 사용된 악곡의 형식으로 후렴구를 특징으로 한다. 농민들이 다같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구, 예를 들어 ‘쾌지나 칭칭 나네’는 노동의 고됨을 잊게 한다. 민중이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반복성의 화음이다.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 작업을 하는 이인규 작가.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 작업을 하는 이인규 작가.
그런 점에서 이인규 작가(35)의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 프로젝트는 사라지는 마을 공동체를 향한 잔잔한 화음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 살아온, 내년 재건축을 앞둔 둔촌 주공아파트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단행본으로 펴내고 페이스북으로 공유한다. 3단지의 명물, 기린 미끄럼틀이 철거되는 과정도 영상으로 담았다. 주민들의 집들을 방문해 공통의 질문들을 던지고 그 답들을 책으로 묶기도 했다. ‘둔촌 주공아파트에 어떤 기억이 있나요?’ ‘이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미디어아티스트 오재우가 가나아트센터의 지원을 받아 2011년 서울역 앞에서 진행한 국민체조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 주어진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것) 영상도 흐른다. 그는 말했다. “1977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움직임을 주입한 이 체조야말로 우리의 몸에 공통된 기억과 경험 아닐까요.”

우리 노랫가락을 채집한 아카이브.
우리 노랫가락을 채집한 아카이브.
‘민중 엔터테이너’인 인디 음악가 ‘한받’이 작곡하고 단원들 각자가 작사한 ‘불만 합창단’의 공연도 주목을 끌었다. 일상과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한 합창단이다. 남녀노소가 섞여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으로 부르는 노래가 왜 그토록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이들은 일민미술관을 빠져나와 청계천로 행진도 했다. ‘왜 가게 종업원은 친절해야 하는지/왜 컴플레인 거는 건 손님만 가능한지/우리 사이 가로막는 갑질의 벽들을/우리 노래 부르면서 부숴 버리자’(노래 ‘불만종합선물세트’ 중에서)

기계적 결속이 강조됐던 농경 공동체, 토지에서 풀려나 도시로 온 개인이 만든 근대의 공동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21세기 지역 사회와 취미 공동체…. 공동체는 우리에게 뭘까. 빛바랜 오랜 기록들을 더듬으며 생각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들게 하는 학구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전시다. 02-2020-2050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일민미술관#아카이브#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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