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초라한 죽음 앞에서 삶의 찬란함을 생각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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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에브리맨/필립 로스 지음/정영목 옮김/192쪽·9500원/문학동네

 ※지난 일주일 동안 272건의 독자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필립 로스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해마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언급돼 온 미국 작가다. 그의 소설 ‘에브리맨’은 뉴욕 광고계에서 잘나가던 노인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다. 책은 주인공이 죽고 난 뒤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장례식에는 첫 부인과 아들 둘, 둘째 부인 피비와 딸 낸시 등이 참석한다. 찾아온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 장례식이 더 초라해 보인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게 한다. 일흔이 넘은 주인공은 수차례의 심장수술로 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직감한다. 뉴욕에서 살다가 해안 마을로 이사를 감행하며, 한적한 곳에서 평생 꿈이었던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외로움을 느끼고 그림 교실을 열게 된다. 수강생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대개 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이다. 세 번이나 이혼했음에도 주인공은 그림 교실에서 새로운 여성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호감을 가졌던 여성은 병의 고통 때문에 자살하고 만다.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괜찮은 노년을 영유할 수 있으리라는 주인공의 믿음은 곧 무너진다. 진정 필요한 건 가족이고 사람이다. 그는 딸 낸시가 있는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딸과 함께 살기를 바라지만 둘째 부인이자 낸시의 어머니인 피비가 쓰러지면서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상사에게 연락해 보지만 그는 이미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흘러내리는 근육, 사막과 같은 피부밖에 남아 있지 않은 노인에게선 죽음의 냄새만이 느껴진다.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려고 해봐도 늙음 앞에서는 바스러져 버린다.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육체의 쇠락으로 인한 죽음이 아직 먼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묘사하는 노년의 죽음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러나 죽음이 이처럼 무섭고 허망한 것이기에, 삶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싱그러운 젊은 시절이 얼마나 눈부시고 가슴 뛰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진다. 죽음이라는 끝에서, 삶이 얼마나 찬란한지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신효섭 제주시 노형동
#에브리맨#필립 로스#퓰리처상#노벨 문학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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