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석의 시간여행]1920, 30년대 단풍놀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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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명소를 소개한 동아일보 1937년 9월 23일자.
단풍 명소를 소개한 동아일보 1937년 9월 23일자.
 가을이 사라졌다는 웅성거림이 바람 속에 떠도는 10월이었다. 처음 보는 해괴한 일이 속출하는 세상이라지만 마침내 자연의 절기조차 존재가 불투명해지는 시절에 다다른 것일까. 이러다간 오래된 노래 제목처럼 ‘잊혀진 계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시월의 마지막 주말 전국의 산하는 단풍 순례 인파로 뒤덮였다. 90여 년 전 그날처럼. 

  ‘가을을 단장하는 단풍을 찾아 북한산과 창경원으로 떼를 지어 놀이를 가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 전차는 평소보다 열 대나 늘여 95대나 운행, 8만여 명의 손님을 실었다. 창경원에 구경 온 사람은 2천여 명. 북한산 단풍은 절정이고 창경원은 십여 일 지나 절정을 맞을 예정이다.’(동아일보 1924년 10월 14일자)

 10월 중순의 일요일 하루에 서울 인구 3분의 1이 색색의 단풍을 찾아 만원 전차로 이동했다는 얘기다. 지금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았을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10월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월은 천고마비의 가을 아닌가. 사무실 창 너머로 호수같이 맑은 하늘과 산야에 널린 오색 꽃과 단풍이 마음을 물들인다. 고대하였다는 듯이 가슴에 넘치는 녹색 동경을 안고 대자연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산으로 숲으로 들국화를 찾아 혹은 코스모스를 찾아 선선한 가을바람과 더불어 놀며 일각이 천금인 듯 흐르는 시간을 아끼리라.’(1938년 10월 16일자)

 자연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지금과 비슷한 듯 어딘지 다르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뭔가 이물질 같은 것이 걸리지 않고 바로 소통하는 모양새다. 궁핍만큼이나 풍족한 무엇이 거기에 있는 듯 느껴진다. 토요일 정오가 지나자 서울의 거리는 교외로 출정하는 희색만면의 청춘남녀 샐러리맨 부대가 삼삼오오 활보한다고 신문은 묘사한다. 지금의 노래 제목을 빌리자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벌어지는 풍경이다.

 금강산으로 직행하는 단풍놀이 열차가 침대칸을 완비하고 야간 특별운행하는 것도 이맘때다(1937년 10월 10일자). 여름에 시작된 중일전쟁이 참상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때였다. 금강산과 내장산까지는 못 가더라도 서울 사람들은 근교에서 지천으로 단풍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고 평탄한 곳으로 산수가 좋은 곳은 망월사를 든다. 창동과 의정부의 중간 지점.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면 어느 역에서 내리거나 약 십 리 거리다. 일요일이나 노는 날은 등산객으로 길이 메일 정도이며 꼬리에 꼬리를 달고 올라간다. 물과 바위가 좋을 뿐 아니라 붉어가는 단풍, 푸른 소나무에서 나는 자연의 향기는 도시의 마굴(魔窟)에서 맡는 향수의 야한 냄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망월사의 바로 뒤가 바로 도봉산인데 그 기괴하고 웅장한 것이 서울의 삼각산에 지지 않을 것이다.’(1937년 9월 23일자)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절, 실종돼 가는 가을 시월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퇴색하는 윤리와 추락하는 신뢰는 해가 가면 회복될 수 있다고 해도 소실되는 가을은 이러다 영영 전설로 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흐린 가을하늘처럼 드리운다. 단풍행렬로도 시위행렬로도 붙잡을 수 없는, 오래된 계절 하나가 만약 우리 곁을 떠나려 한다면 이 일은 또 어이할까.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
#단풍명소#1920년#1930년#단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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