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는 배려와 공감의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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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흰둥이’ 출간한 윤필 작가

만화 ‘흰둥이’의 한 장면. 힘들게 얻은 소시지를 반 잘라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에게 나눠 준다. 창비 제공
만화 ‘흰둥이’의 한 장면. 힘들게 얻은 소시지를 반 잘라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에게 나눠 준다. 창비 제공
《늘 그랬듯 이번 여름 휴가철에도 수많은 강아지들이 버려졌다.

최근 출간된 만화 ‘흰둥이’(창비)의 주인공 강아지도 그런 신세였다. 주인 가족은 거추장스러운 폐기물 내던지듯 흰둥이를 따돌리고 떠나갔다.

여느 강아지들이 그렇듯 흰둥이도 그런 주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주인의 마지막 명령으로 구해온 과자를 입에 문 채, 며칠을 굶고도 먹지 않고 참는다.

진짜로 버려졌음을 확인한 후에야 물고 있던 과자를 조금씩 씹으며 나지막이 흐느낀다.》
 
윤필 씨가 그린 강아지 ‘흰둥이’는 의인화된 캐릭터로 청소나 공사장 노동을 하지만 말은 못 한다. 기쁠 때 혀를 내밀고 앞발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는 게 가장 격렬한 감정표현이다.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윤필 씨가 그린 강아지 ‘흰둥이’는 의인화된 캐릭터로 청소나 공사장 노동을 하지만 말은 못 한다. 기쁠 때 혀를 내밀고 앞발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는 게 가장 격렬한 감정표현이다.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만화가 윤필 씨(36)는 흰둥이에 대해 “그리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한결같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어려움에 빠진 이에게 작은 배려라도 하려 애쓰고, 손해 봐도 원망 않고…. 이 강아지는 어떤 이상향의 성품을 가졌다. 하지만 작가인 나는 탐욕도 부리고 거짓말도 하고 남에게 상처도 입힌다. 바보 같지만 그리다가 그런 생각이 들어 혼자 운 적이 꽤 있다.”

까만 점 세 개로 눈과 코를 대신한, 말 못 하는 강아지 흰둥이는 2010년 태어났다. 윤 씨가 다른 만화가의 조수로 일하며 틈틈이 복사용지에 연필로 그린 것을 스캔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 ‘야옹이와 흰둥이’가 출발점이었다. 그걸 본 한 포털 만화 사이트 편집자가 ‘흰둥이만 등장시켜 10회로 연재하자’ 제안해 왔다.

“야옹이는 익숙한 느낌인데 ‘의인화된 말 못 하는 강아지’ 설정이 신선하다는 얘기였다. 그림체가 화려하지 않아서 계약 연장이 안 될 거라 생각하고 하고 싶던 얘기를 최대한 밀도 있게 짜서 그렸다. 운 좋게 반응이 잘 나와 연재가 이어졌다. 빼놓아서 미안했던 야옹이도 다른 작품에 새로 그렸다.”

변두리 골목을 헤매던 흰둥이는 고철과 폐지를 주우며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와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때에 찌든 흰둥이를 ‘깜둥이’라 부르며 도시락을 나눠 준다. 의인화된 이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그들 뒤를 따라가지 않는다. 깍듯이 인사하고 작별한 다음 날, 배고픔을 덜어준 보답으로 고철을 잔뜩 모아 온다.

“흰둥이는 애완견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다. 홀로 잘나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모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성장한다. 그런 삶에서 역지사지의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간단한 메시지를 담고자 시작한 만화인데…. 어째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얘기인데도 어렵고 무겁게 느껴진다.”

‘흰둥이’의 포털 연재는 중단됐지만 완결된 건 아니다. 웹툰이 책으로 나오면 대개 인터넷 연재분이 유료화되지만 윤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두 푼 용돈이 아쉬운 어린 학생들이 한 명이라도 더 봐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검둥이 이야기’, ‘일진의 크기’ 등 그의 다른 만화도 어린 독자에게 경계하거나 당부하고 싶은 주제로 엮었다.

“가난한 소녀를 코흘리개라고 놀리며 괴롭히던 아이들이 반성하고 화해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현실감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어린이 독자가 ‘친구 못살게 군 일 반성했다’는 글을 보내줬을 때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 내 만화는 잊혀져도 좋다. ‘남에게 상처 주지 말자’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고 흰둥이가 몸으로 전한 메시지를, 잠깐이라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윤필#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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