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난무하는 사회’ 웃음과 감동으로 고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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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영화 ‘4등’에서 만년 4등 준호(오른쪽)는 코치인 광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결과 성적이 오르지만 준호는 마냥 기뻐하지 않는다. 워너비펀 제공
영화 ‘4등’에서 만년 4등 준호(오른쪽)는 코치인 광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결과 성적이 오르지만 준호는 마냥 기뻐하지 않는다. 워너비펀 제공
일류, 이류, 삼류는 있지만 사류는 없다. 금, 은, 동메달은 있지만 철(鐵)메달은 없다. 그만큼 4등은 낯선 단어다. 13일 개봉한 영화 ‘4등’(15세 이상)은 이 애매한 등수에만 줄곧 오르는 초등학교 수영선수 준호(유재상)가 주인공이다. 그를 통해 한국 스포츠계, 나아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만년 4등인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지만 1등 욕심이 없는 편. 펄펄 뛰는 쪽은 엄마(이항나)다. 엄마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소개받은 국가대표 출신 새 코치 광수(박해준)는 “1등은 물론이고 대학도 보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광수의 훈련방법은 다름 아닌 체벌. 윽박지르고, 얼차려를 주고, 그도 안 통하면 매를 든다. 엄마는 준호 등의 시퍼런 멍을 눈치채지만 “맞는 것보다 4등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영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그 말대로 영화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등장인물에겐 이유가 있다. 광수는 젊은 시절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국가대표 선수촌을 뛰쳐나온 경험이 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극성인 엄마는 준호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정작 자신은 공허하다. 아빠(최무성)는 체벌 사실을 알고 제지하지만 그도 폭력의 대물림에 기여한 과거가 있다. 심지어 준호마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이중의 굴레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감동의 균형을 잡았다. 촌철살인의 대사와 사실감 넘치는 장면 덕분이다. 정 감독은 이번 영화를 위해 실제 수영선수와 코치, 학부모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4등을 한 준호에게 엄마가 “너 엄마가 싫지. 이 싫어하는 엄마가 쫓아온다고 생각해 봐. 그럼 초가 준다고!”라고 말하는 장면, 늘 “취미로 하라”고 말만 하면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않는 아빠의 모습, 국가대표 합숙소에서 벌어지는 구타 장면 등은 이렇게 완성됐다. 실제 수영대회를 찾아다니며 촬영하고, 주인공을 비롯해 수영 장면을 소화한 출연진 상당수를 전직 선수나 현역 선수, 코치로 구성했다.

모두를 공평하게 바라본 덕분에 영화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위로의 순간과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함께 보여준다. 한국에서 입시 때문에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공감할 만하다. 간만에 지금 우리의 문제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바라본 영화가 나왔다. ★★★★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영화#4등#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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