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1m 아래 300m 긴터널과 겹겹의 철문
1986년 박물관 수장고로 용도 변경…총 3만1000여점 유물 보관
조선시대 어보와 어책이 보관된 국립고궁박물관의 ‘제10수장고’(사진 위). 이곳은 박물관과 터널로 연결된 지하 수장고로 총 1000여 점의 왕실 유물이 보관돼 있다. 이 수장고로 통하는 중간 철문 위에 설치된 ‘전자태그(RFID) 리더’를 박물관 관계자가 가리키고 있다(사진 아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수장고(收藏庫·유물을 보관하는 곳).
박물관 지하로 내려가 300m에 이르는 긴 터널을 통과하자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안쪽 수장고를 가려면 25cm 두께의 철문을 다시 한 번 열어야 한다. 지상으로부터 11m 아래인 이곳은 천장이 이중 콘크리트로 설계되는 등 거대한 군사요새를 방불케 했다. 실제 이곳은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의 전시용 비상벙커로 만들어졌다가 1986년 옛 중앙청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수장고로 개조됐다. “여긴 일반인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2004년부터 수장고 관리를 맡고 있는 서준 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철문 위에는 태양광 패널과 비슷한 모양의 직사각형 패널 두 개가 나란히 달려 있다. ‘전자태그(RFID) 리더’다. 모든 유물에 달려 있는 RFID를 읽어내 수장고 내 유물 반출, 반입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장치다. 특정 유물을 수장고 밖으로 빼내면 보안팀 모니터에 해당 유물의 이름과 관리번호가 표시된다. 서 연구사는 “만약 사전에 반출 허가를 받지 않은 유물이 수장고 밖으로 나가면 경고음이 울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지하 수장고는 총 16개(본관 수장고 2개 제외)로 면적은 3734m²에 달한다. 총 소장유물은 4만4760점인데 이 중 지하 수장고에만 3만1000여 점이 보관돼 있다. 박물관은 30일부터 연말까지 40명의 관람객에 한해 본관 수장고 한 곳(제2수장고)만 공개할 예정이다. 국립박물관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장고 일부를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다. 유물 보호를 위해 이날 기자가 직접 둘러본 지하 수장고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모든 수장고에 보물이 넘쳤지만 압권은 어보(御寶·왕과 왕비, 세자, 세자빈의 인장)와 어책(御冊·왕위 책봉 등에 어보와 함께 올리는 책)을 모아놓은 제10수장고였다. 황금빛의 묵직한 어보와 옥으로 만든 어책이 오동나무 진열장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보 옆에는 이를 보관하는 상자인 보통(寶筒)과 보록(寶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황동으로 만든 보통을 감싸는 보록은 나무상자에 상어 껍질을 씌운 뒤 주칠(朱漆·빨간색으로 옻칠을 한 것)까지 마친 고도의 공예품이다. 보록 위에 금색으로 그린 매화, 호랑이, 대나무 등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10수장고에 있는 어보인 ‘경순왕후지보’. 경순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할머니로 왕후로 추존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곳에만 어보 320점, 어책 257점, 교명(敎命) 32점 등 총 1000여 점의 조선왕실 유물이 보관돼 있다. 박물관 측은 현재 조선 어보, 어책에 대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 신청을 준비 중이다.
수장고 내부 진열장과 천장은 모두 오동나무로 제작돼 있고 바닥은 너도밤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벌레가 번식하는 것을 막고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박물관의 심장에 해당하는 수장고는 보안 못지않게 항온, 항습이 핵심. 나무나 금속, 종이 등 유물의 재질에 따라 수장고를 분류하는 것도 각기 다른 온도와 습도를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자기를 주로 보관하는 제8수장고는 습도 53.6%, 온도 20.2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최종덕 국립고궁박물관장은 “비록 제한된 인원이지만 관람객들이 최첨단의 보안과 항온, 항습시설이 구비된 수장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30일을 시작으로 8, 9, 12월에 각 1회씩 총 4회에 걸쳐 회당 10명씩만 선착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02-3701-7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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