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와 3·1운동]“빚 못 갚아 미안합니다”… 만세운동 앞두고 기독교에 거금 빌려준 천도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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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첫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부터 건립된 나라임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3.1운동이 우리나라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하겠다.
참으로 기억할 만한 사실은 위대한 3·1운동의 한가운데에 천도교, 불교, 기독교(개신교) 등 종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이 이들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3·1운동의 시작과 전국적으로 번진 만세운동에 이 신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기독교만 예로 들어도, 전국에 흩어져 있던 교회당이 3·1운동의 연락망이었고 만세운동에 사용된 태극기를 교회당에서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인해 기독교가 당한 피해 또한 상당하다는 통계도 있다. 당시 천도교나 불교도 만세운동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3·1운동은 당시의 종교인들이 중심을 잡았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인데 어떻게 그 당시에 다른 종교끼리 단합해 민감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사건에 의견을 같이하고, 행동하고, 협력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기독교의 경우 민족대표로 참여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요즘 말로 사회 참여를 주장하는 진보적 인사가 아닌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기독교 대표 중 한 분인 길선주 목사만 하더라도 보수적인 복음주의자이며 유명한 부흥강사였다. 그런 분이 정치적 사건인 3·1운동에, 그것도 천도교인과 불교도 등 전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했다. 요즘도 그런 기독교 목사가 있으면 정치목사 혹은 좌파라고 비난을 받을 텐데 말이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역사적 정치적 의의뿐만 아니라 종교사 측면에서 다시 연구해 그 교훈과 전통을 계승해야 할 책임이 오늘의 종교인들에게 있다.
3·1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좋은 협력관계가 적지 않았다. 그 한 가지는,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기독교가 자금이 부족해 부득이 천도교에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천도교가 두말 하지 않고 흔쾌히 그때 돈 5000원을 빌려줬다. 그 돈은 요즘 화폐 가치로는 50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큰일을 위해 내 돈 네 돈 따지지 않고 종교 간에 재정적 협력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 선배 종교인들의 넓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기독교가 당시에 빌려간 돈은 갚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돈을 아직까지 안 갚은 듯한데 천도교도 기독교에 빚 갚으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또 한 가지, 아름다운 협력관계 중에 하나는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 지도자의 수가 유난히 많은 것도 불교의 양보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종교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불교 측의 넉넉한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우리 민족 역사에 위대한 사건이었던 3·1운동은 종교 간의 상호존중, 그리고 아름다운 협력과 상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이 같은 위대한 전통은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왔고 앞으로 남북의 화해라는 역사적 과업 달성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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