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끝난 후에야 알게되지, 사랑했음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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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백영옥 지음/280쪽·1만3000원/위즈덤하우스
한 남자를 둘러싼 세 여자 이야기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한 사랑과 아픔을 공감하는 ‘자매애’ 그려
4년만에 새 장편 낸 백영옥 작가 “자신을 사르는 사랑 보여주고파”

사랑이 끝났을 때에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스스로 가늠해볼 수 있다. ‘애인의 애인에게’에서 주인공 마리는 남편 조성주를 향한 사랑이 끝난 뒤 자신이 모든 것을 다해 사랑했음을 고백한다. 사진작가 하시시 박이 촬영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사랑이 끝났을 때에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스스로 가늠해볼 수 있다. ‘애인의 애인에게’에서 주인공 마리는 남편 조성주를 향한 사랑이 끝난 뒤 자신이 모든 것을 다해 사랑했음을 고백한다. 사진작가 하시시 박이 촬영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주인공은 사진작가, 무대는 뉴욕 예술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 명의 여인. 백영옥 씨(42)의 소설답다. 그는 ‘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 ‘아주 보통의 연애’ 등을 통해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온 작가다. 새 장편 ‘애인의 애인에게’에서 백 씨는 한 남성을 상대로 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질투에 어린 여성들의 사랑싸움일까. 백 씨는 다른 메시지를 말한다. ‘자매애’다. 소설 1부에 등장하는 이정인은 출판편집자로 일하다 결혼에 실패하고 뉴욕으로 공부하러 온 여성이다. 그는 우연히 같은 강의를 듣게 된 사진작가 조성주를 짝사랑한다. 성주를 알고 싶은 마음에 그의 집에 숨어든 정인은 연모하는 남성 성주보다 그 아내 장마리의 아픔을 알게 된다. 2부에서는 마리가 성주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가 이별 여행이라는 파국에 이르기까지의 사연이 담겨 있다. 3부에선 불행한 결혼 생활로 상처를 입은 김수영이 성주의 구애에 흔들리는 모습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들의 남성성이 쇠락해가는 데 반해서 여성들은 공감하는 게 많아지고 단단히 연대하게 되더라. 사랑의 아픔에 공감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 작가의 설명이다.

백영옥 작가
백영옥 작가
실제로 이 작품에선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인해 상처 입은 마음은 같다. 여성들은 서로를 시기하는 대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민을 갖는다.

소설에서 여성들의 연대감을 상징하는 것은 스웨터다. 성주와 마리가 이별 여행을 떠난 뒤 성주의 집에 들어간 정인은 마리가 뜨다 만 스웨터를 발견한다. 정인은 성주의 분방함과 성공에 대한 집착에 고통받은 마리의 심정을 헤아린다. 정인은 그런 마리를 생각하면서 털실을 풀어 스웨터를 다시 뜬다. “스웨터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정인이 뜬 스웨터를 마리가 입는 행위를 통해 위로가 전달되는 것, 자매애란 그런 것이다”라고 백 씨는 설명했다.

상대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이 다칠까 미리 방어하는 요즘 사랑에 대해 백 씨는 ‘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사르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소설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마리의 고백은 그가 얼마나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사랑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랑이 끝난 후에야 우리가 사랑의 시작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끝났을 때에야 우리가 사랑에 대한 오해를 넘어 이해의 언저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끝났을 때만이 우리는 정확한 사랑의 고백을 남길 수 있다는 것 말이다. … 가장 정확한 사랑의 고백은 오직 독백의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것.’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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