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천둥과 우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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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천둥소리 요란한데 빗방울은 작다.’ 소리만 컸지 실상은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과 비슷하다. 중국 언론이 10일의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을 비꼰 말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는 ‘천둥의 신’으로 불린다.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이 시속 160km나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천둥은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放電)현상’을 이른다. 본래 천동(天動)이라는 한자어에서 왔는데 우리나라에서 음이 바뀌었다. 장고(杖鼓·長鼓)가 장구로, 호도(胡桃)가 호두로 된 것처럼.

천둥과 뜻이 같은 우리말은 ‘우레’다. “우레라니? 우뢰가 표준어 아닌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도 많을 줄 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레는 우레→우뢰→우레로 표준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레는 ‘하늘이 운다(鳴)’는 뜻에서 나왔다. ‘울다’의 어간 ‘울-’에 접사 ‘-게’가 붙어 ‘울게’가 되고, ‘ㄱ’이 ‘ㄹ’의 영향을 받아 ‘ㅇ’으로 약화돼 ‘울에’가 됐다가 ‘우레’로 바뀌었다. 그런데 왜 우뢰를 한때 표준어로 삼았을까. ‘울에’가 ‘우레’로 바뀌면서 한자어 ‘우뢰(雨雷)’의 간섭을 받았기 때문. ‘우레’의 어원을 ‘우뢰’로 잘못 인식한 것이다(그런, 우리말은 없다·조항범). 그러다 우레는 ‘울-(鳴)’에서 파생된 명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1989년 시행한 표준어 규정에서 ‘우레’로 되돌렸다. 현재 국어사전은 ‘우레’를 표준어로 삼고 한자어 우뢰는 버렸다.

우리와 달리 북에서는 ‘우뢰’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우뢰와 함께 내리는 비를 ‘우뢰비’, 우뢰가 우는 것을 ‘우뢰질’이라 한다. 많은 사람이 치는 매우 큰 소리의 박수도 ‘우뢰 같은 박수소리’라 한다. 우레와 우뢰는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모두 천둥은 표준어로 삼고 있다. 천둥이 울 때 나는 소리를 천둥소리라 하고, 천둥벌거숭이도 함께 올려두고 있다. 왜 있잖은가. 북한이 핵실험을 시사하며 “언제든 ‘핵뢰성(核雷聲)’으로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하는데, ‘핵뢰성’은 바로 핵천둥을 뜻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대추 한 알·장석주). 어떤가. 천둥은 시어로도 썩 잘 어울린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천둥#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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