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X처럼 손 휘젓는 여자!” 뮤지컬 쥐락펴락, 음악감독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7일 16시 31분


뮤지컬 공연 시작 전 가장 먼저 관객의 박수를 받는 사람, 공연 후 가장 마지막에 관객의 박수를 받는 사람이 있다. 뮤지컬 ‘음악 감독’이다.

뮤지컬 음악 감독 세계에선 ‘여풍’(女風)이 거세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엘리자벳’ ‘명성황후’ 등 올해 10개의 작품을 맡고 있는 김문정 감독(44),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드림걸즈’ ‘베어더뮤지컬’의 16년차 원미솔 감독(38), 뮤지컬 ‘라카지’ ‘형제는 용감했다’의 장소영 감독(44)이다. ‘여성 3인방’에게 뮤지컬 음악감독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뮤지컬의 내비게이션

공연 시작의 키를 쥔 사람은 음악 감독이다. 음악 감독의 지휘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하면서 막이 오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음악 감독의 지휘봉에 따라 연주자들이 연주를 시작하고 배우들은 노래의 첫 박자를 맞추며 호흡을 조절한다”며 “음악 감독은 뮤지컬의 내비게이션”이라고 설명했다.

음악 감독은 작품의 ‘음악’을 총책임지는 리더이지만, 작품 전반에 그들의 땀이 배이지 않은 곳이 없다. 원 감독은 “창작 뮤지컬은 대개 2년 전, 라이선스 작품은 1년 전부터 작업에 들어간다”며 “대본 작업부터 참여해 주로 음악에 맞게 가사를 개사하거나 새로운 곡을 만든다”고 말했다.

배우 캐스팅에도 음악 감독은 주요 심사위원이다. 장 감독은 “배역에 맞는 음색의 배우를 골라내는 게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말한다. 7,8주 간의 연습 기간에는 오케스트라 합주 연습과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라도 서로 음역대가 다른 만큼 이를 맞추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제작사가 선호하는 음악 감독은 극소수다. 김 감독은 최근에는 동시에 4개 뮤지컬에 ‘겹치기 감독’을 맡았다. 같은 시간대 다른 극장에서 막을 오르는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 잘나가는 감독들은 ‘협력 음악 감독’을 둔다. 김 감독은 3명, 원 감독은 4명, 장 감독은 2명의 협력 음악 감독을 두고 있다.

●공연 전에 화장실과 금식은 필수

음악 감독은 공연 내내 지휘봉을 휘둘러야 한다. 오죽하면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루케니 역의 배우 최민철이 2막 정신병원 장면에서 객석을 향해 “매일 밤 무시무시한 흰 막대기를 들고 미친년처럼 손을 휘젓는 여자!”라는 애드리브 대사와 함께 음악 감독을 소개했을 정도다.
김 감독은 “‘레미제라블’의 경우 에포닌의 독창 네 소절에 물을 마시지 못하면 공연 끝날 때까지 물 마실 틈이 없고 명성황후는 아예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다”고 했다. 김 감독은 “엘리자벳 초연 때 장염에 걸려 공연 내내 배를 쥐어뜯은 이후로는 공연 전엔 늘 금식한다”고 말했다. 원 감독도 “생리현상이 가장 참기 힘든 고충”이라며 “저녁 공연이 있는 날에는 오후 6시 이후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악 감독 입문 전 건반 세션으로 활동

세 명의 공통점은 음악 감독 데뷔 전 뮤지컬 오케스트라 건반 주자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1997년 명성황후의 반주자로 발을 들여놓은 뒤 2001년 뮤지컬 ‘둘리’로 음악 감독에 데뷔했다. 그는 “데뷔전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동기들과 노래방 기계에 들어가는 수천 곡의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때 편곡과 악기 사용법을 제대로 익혔다”며 웃었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원 감독은 22세에 음악 감독이 됐다. 원 감독은 “1999년 뮤지컬 록햄릿의 오디션 반주자로 시작해 건반 세션을 하게 됐고 이후 제작자 눈에 띄어 음악 감독이 됐다”고 말했다. 장 감독도 연세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가족 ’등의 오케스트라 편곡자과 반주자로 활동하다 2004년 뮤지컬 ‘하드락카페’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김정은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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