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지구 반대편에서 온 다육식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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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통조림 깡통에 은빛 래커 페인트를 발라준 화분은 쿨한 느낌의 다육식물과 아주 잘 어울린다. 오경아 씨 제공
버리는 통조림 깡통에 은빛 래커 페인트를 발라준 화분은 쿨한 느낌의 다육식물과 아주 잘 어울린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몇 달씩 물을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식물이 있다니! 물 주기를 잊어 식물을 죽이는 사람들에게 다육식물(Succulents)의 등장은 신선했다. 그 뜻이 ‘즙을 갖고 있는’인 다육식물은 지구의 사막형 기후에서 자생하는 식물군으로, 대부분 통통한 줄기 속에 성장에 필요한 물을 비축하고 있다. 실제로 수개월 동안 모래사막을 여행하는 유목민들은 이 다육식물의 줄기를 잘라 그곳에 담긴 물을 먹고 생존한다. 식물이 물을 담고 있어봐야 얼마이겠나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선인장의 한 종류인 서와로는 3000L의 물을 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잠깐 오해를 풀고 가자면, 선인장이 곧 다육식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다육식물은 선인장을 포함한 모든 건조한 사막기후에서 살고 있는 식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선인장은 그중에서도 아메리카 지역에만 자생하는 과(科)로 이 자체로도 2000종이 넘는다. 딱 한 종의 선인장만이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자생하는데 이 역시도 수천 년 전 씨를 먹은 철새가 바다를 건너 전달시킨 것으로 판명 나 결국 모든 선인장은 아메리카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선인장은 다육식물이지만 모든 다육식물을 선인장으로 호칭할 수는 없다.

선인장을 포함해 다육식물들은 잎을 가시로 변형시키곤 한다. 식물은 뿌리로 수분을 흡수해서 잎의 기공을 통해 분출을 하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이런 작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아예 잎을 가시로 만들고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광합성 작용을 줄기가 대신한다. 대부분 줄기가 갈색으로 딱딱한데 다육식물의 줄기가 딱딱하지 않고 잎처럼 부드럽고 초록색을 띠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다육식물의 가시는 키가 크면 아랫부분에만 많고 위로 올라갈수록 없어진다. 이건 자신을 먹을 수 있는 동물들의 키까지만 가시를 발달시킨 영리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이 다육식물을 아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 어떤 분이 내게 “지금 저희 집에는요. 선인장 나무가 살아요. 원래는 손바닥만 한 다육식물을 하나 사서 키웠는데 몇 년 후에 제 키를 훌쩍 넘겼어요”라고 놀라워하던데 실은 당연하다. 자생지에서 자라는 다육식물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나무들이고 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다육식물은 수 m 혹은 수십 m에 달하기도 한다.

물론 바위틈에 붙어서 사는, 다 자라도 우리의 엄지손가락 크기를 넘지 못하는 종도 있어서 그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다육식물은 실내식물 혹은 베란다 정원에 가장 적합한 식물군이라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한두 달은 물주기를 잊어도 끄떡없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환경이 있다. 우선 춥고 습한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다육식물은 녹아내리듯 땡땡함을 잃고 흐물흐물 죽게 된다. 더불어 자생하는 환경을 떠올려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듯이 대부분 강렬한 햇볕을 좋아한다. 그래서 실내환경 중에서도 습기가 많고 빛이 잘 들지 않는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곳에서 다육식물을 키우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사막에서는 밤이면 기온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다육식물의 대부분은 추위에 강하다. 이 때문에 건조하면서, 빛이 잘 들고, 추위가 영하로 며칠씩 지속되지 않는 장소가 좋다. 베란다, 빛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창문가, 거실의 탁자 위, 공부방의 책상 등에 모두 적합하다. 물은 봄부터 여름 사이에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겨울 석 달은 아예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다육식물 중 특히 ‘시어머니의 혓바닥’이라는 다소 괴기한 별명이 붙은 산세비에리아는 별명과는 달리 공기를 정화시키는 능력도 뛰어나 실내식물로서도 안성맞춤이다.

물주기도 귀찮고 게다가 까다로워 견디지 못하고 죽기라도 하면 마음의 상처까지 받는 일이 식물과 함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다시 식물을 사게 되고, 내 책상 위에, 창문가에 다시 두게 되는 것일까? 식물이 주는 에너지가 분명 있다. 이건 나만의 주관적 믿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속속 밝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생명체인 식물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고, 우리 역시도 식물에 이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 소통이 우릴 좀 더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굳이 과학적 이론이 아니어도 우린 직감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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