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예술과 사랑, 편지로 만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2일 1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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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카페에서 한 부인이 피카소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 부인은 피카소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피카소는 쓱쓱쓱 단 몇 분 만에 그림 한 점을 그려 주었다. 그리곤 그 그림 값으로 꽤나 부담스러울 만큼의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부인은 당황했다. “이렇게 간단히 그린 그림에 너무 비싼 값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피카소가 답했다. “저는 단 몇 분 만에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난 40년 동안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근대미술사에 우뚝 선 화가, 이.중.섭.(1916~1956) 소에 미쳐, 소에 천착해 소를 그린 소의 화가.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인 그는 전통과 현대를 포용하면서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맞이해 그렇기도 했지만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사랑의 삶’은 굴곡 그 자체였다. 찢어지게 가난해 캔버스 대신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전쟁 통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원산 도쿄 부산 제주 통영 서울 대구… 그의 행로마다 독창적인 작품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의 삶 곁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다.

이중섭의 아내는 마사코다. 일본여자다. 1930년대 일본 문화학원 유학시절 사귀었던 여인이었다. 일본 재벌 중역의 딸이었다. 식민지 조선인 유학생과 일본 재벌 중역의 딸.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비극이 예정돼 있는지도 모른다. 이중섭은 달콤한 일본에서의 연애를 뒤로하고 홀로 귀국한다. 세상이 어수선한 전쟁 막바지.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전쟁의 포화보다 더 뜨거웠다. 연인은 헤어져선 살 수 없는 법. 마사코가 이중섭을 찾아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함께 살았다.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남덕이었다. 한반도 북쪽의 사회주의 체제 그리고 억압, 가난… 자유분방한 그에게 북쪽은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피난. 그는 전쟁의 가난을 피하기 위해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그리움의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그리움을 해소할 방법은 그림과 편지뿐이었다. 편지와 그림은 하나가 되어 현해탄을 건넜다.

‘이중섭의 편지(이중섭 지음 l 현실문화 펴냄)’는 제목 그대로 이중섭이 아내 이남덕과 두 아이 그리고 조카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대부분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서른아홉 통이다. 아이에게 보낸 편지까지 합하면 60여 통이다. 편지에는 그림엽서, 드로잉, 은박지 그림, 유화 등이 편지 원문과 함께 있다. 이중섭의 삶과 사랑 예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며 예술에 대한 혼을 엿볼 수 있다. 그 역시 화가라는 예술가 이전에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였고 두 아이를 그리워한 아버지였다. 인간미가 물씬 배어난다. 편지 중 한 편을 엿보면 이렇다.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들의 생활안정과 대향(이중섭)의 예술완성을 위해 오로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 예쁘고 진실되며 나의 진정한 주인인 남덕 씨, 이 대향을 굳게 믿고 마음 편안히 힘차고 즐거운 미래만을 생각함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오.’ 책을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봄날 벚꽃을 보며 읽고 싶은 책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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