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패션이다? 색상-사이즈 내 맘대로 고를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8일 14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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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생각이에요. 어떤 색상을 좋아할까요.” “외출할 때 클러치백을 주로 들어요. 어떤 사이즈가 편할까요.”

옷이나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에 걸려온 전화가 아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출판사 아티초크에 걸려온 독자 문의다.

이 출판사에서는 ‘책도 패션이다.’

같은 책도 옷처럼 판형(사이즈)과 표지(색상)를 달리해 독자가 자기 스타일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인 아티초크 박헬렌 대표는 다양한 색상과 사이즈로 옷을 만드는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를 참고해 책도 선택 폭을 넓혔다. 책엔 비닐커버를 씌워 새 옷 포장을 뜯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출판사는 이달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출간하면서 화가들의 작품을 살린 세 가지 표지로 출간했다. 카를로스 슈바베의 ‘파괴’, 구스타프 클림트의 ‘금붕어’, 로비스 코린트의 ‘순수’가 그려져 있어 하나를 택하면 된다. 여성이 도전적으로 정면을 노려보거나, 수줍게 나신을 드러내고, 슬픈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 같은 시집이면서 느낌이 확 다르다.

이에 앞서 지난해 출간한 첫 책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선집 ‘꿈 속의 꿈’은 세 가지 판형으로 제작했다. 스마트폰 크기의 ‘포켓’(9cmX14.8cm), DVD 케이스 크기의 ‘레귤러’(11cmX18cm), 미니 태블릿PC 크기의 ‘라지’(12.5cmX20.5cm)다. 이 출판사 박준 팀장은 “휴대성을 따지면 포켓형, 가독성을 원하면 라지형을 고른다”며 “남성 독자는 잠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포켓형을 많이 찾았다”고 했다.

클럽에서 진가를 드러내는 야광봉, 야광 팔지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책도 나왔다. 출판사 천년의상상은 이달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를 책으로 옮긴 ‘열정에 기름붓기’를 출간하면서 표지에 야광 물질을 입혔다. 책을 읽다가 불을 끄면 형광색 열기구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완규 대표는 “20대 저자들의 혁신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은 만큼 책의 물성도 혁신적으로 만들었다”며 “젊은층이 책의 물성에 호기심을 느껴야 독서와 거리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 옷을 만들 듯 수작업으로 제작한 책도 인기다. 디오브젝트 출판사는 표지 인쇄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한다. 여러 가지 색을 겹쳐 찍으면 결과물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 세상에 단 한 권만 존재하는 효과를 낸다. 김주영 디자이너는 “옷을 살 때도 남과 다른 특이한 옷을 고르듯이 남이 만들지 않는 특별한 책을 만드는 시도가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이들 출판사들은 판형과 표지 디자인에서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아티초크의 북 디자인은 미국인 아트디렉터가 맡았다. 박 대표가 출판사를 창업하면서 판형과 표지를 고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현해 줄 국내 북 디자이너를 수소문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다며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출판계 불황 속에서 독특한 ‘패션’을 자랑하는 책들은 판매에서도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아티초크가 낸 책 5종 모두 초판 발행부수(1000~3000부)를 모두 팔고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아티초크는 1월부터 인터넷 서점 인터파크, 알라딘에도 입점했다.

박준 팀장은 “책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생각하기보다 스타일대로 고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처럼 만들어 독자와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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