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남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눈물’. 얀 페르메이르의 원작을 치열하게 재해석하기보다는 그 명성과 아우라를 표피에 차용하는 데 그쳤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예술은 어쩌면 평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최근 만난 한 국내 갤러리 대표는 “작가가 명성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생전에 널리 인정받던 작가가 죽음과 동시에 깨끗이 잊혀지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내년 2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다시 태어나는 빛’을 여는 이이남 작가(45)는 현재 한국에서 누구보다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한국화 또는 서구 유명 작품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작업을 선보여 이름을 알렸다. 내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전에도 초청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영상 작업 20점과 조각설치물 8점을 내놓았다. 전시실 초입 ‘빛의 언어 1’은 ‘밀로의 비너스’를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여러 개 복제해 줄지어 뒤돌려 세워놓은 뒤 추사체를 빌려 쓴 한자성어 구성 영상을 빔 프로젝트로 비췄다. 옆방 ‘빛의 탄생’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의 ‘목수 성 요셉’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등 옛 회화 속 촛불을 불꽃놀이 애니메이션으로 치환한 영상작품이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은 18세기 조선 화가 강세황의 그림 속 인물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소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변모시킨 애니메이션이다.
모든 작품이 구경하기에 흥미롭다. 어린이 방문객은 오밀조밀 움직이는 한국화 속 인물들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삼성전자가 그를 전속 협찬작가로 삼고, 올림픽 홍보관 등 대중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행사에 그가 꾸준히 초대받는 까닭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과 작가의 속내에 대한 궁금함은 일어나지 않는다. 라투르 작품의 매력은 광원(光源) 없이 작품 속에 빛을 발생시킨 데 있다. 그 부분을 발광다이오드(LED)로 대체할 때 짤막한 흥미 외에 무엇이 남는가. 일정 주기로 물속에 디스플레이를 담갔다 꺼내는 작품은 흔하다. 그 상투적 프레임을 가져온 ‘Reborn Light’는 파닥거리는 영상 속 비둘기를 물고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2층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눈물’은 네덜란드 화가 얀 페르메이르(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복제 이미지를 확대해 뿌옇게 김 서린 창을 통해 건너다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흐르는 물기를 소녀의 볼 위에 얹어 제목을 얻었다. 대표작으로 내세운 ‘다시 태어나는 빛’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FRP로 복제해 예수를 분리시켜 공중에 매달았다. 보기 좋다. 그게 전부다. 02-720-1020
댓글 0